[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손예진의 ‘내숭 테크닉’

  • 입력 2004년 11월 10일 18시 23분


《젊은 남자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여배우 4명이 있다. 김태희 손예진 송혜교 전지현(가나다순). 이 중 여자들이 ‘일단 미워하고 보는’ 유일한 배우가 있다. 손예진이다. 왜 그럴까. 그녀의 ‘내숭’ 때문이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그녀의 내숭은 정점에 올라 있다. 내숭은 나쁜가. 아니다. 손예진의 내숭은 그 자체로 영화의 강력한 스타일을 이룰 뿐 아니라 아주 진한 멜로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속 손예진의 ‘내숭 테크닉’을 해부한다.》

○리듬:환상의 호흡조절

약한 체하지만, 순식간에 강하게 찌르고 들어가는 적극성을 보석처럼 숨기고 있다. 공사장에서 정우성(철수 역)을 눈여겨본 손예진(수진 역)은 다음 날 “저, 우연히…, 여기…, 약속이 있어서…, 걸어가는데…”하면서 마주친 척하며 정우성의 술자리에 합석해 바로 키스까지 한다. 야구장에서도 “못해. 못해” “어머, 어머. 너무 무서워”하며 배트조차 무거워 질질 끌다가도 공은 제대로 쳐낸다. 목욕을 마친 손예진의 가운을 정우성이 풀어헤치며 나누는, “가슴은 씻었어?”(정) “몰라”(손) “겨드랑이는?”(정) “씻은…거 같아”(손) “발가락은?”(정) “몰…라”(손)와 같은 낯부끄러운 대화의 와중에도 손예진은 정작 풀어진 가운을 고쳐 입지 않는다. ‘완급조절’도 중요하다. 남자가 다가올 땐 일단 한발 뺀 뒤 다시 허를 찌른다. 정우성이 “그거(소주)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고 하자, 손예진은 일단 “안 마시면?”하고 되물어 긴장을 유발한다. 그 뒤 단숨에 소주를 털어 넣는다.

○제스처:신체부위별 ‘필살기’

늘 남자가 있는 쪽의 머리칼만 귀 뒤로 넘겨 순진무구한 귀를 노출한다. 손끝은 특히 중요하다. 소주잔은 오른손 엄지 중지 약지로만 앙상하게 쥠으로써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은 연약한 느낌을 준다. 자판기에 넣을 500원짜리 동전도 엄지 검지로만 살짝 잡는다. 놀라거나 당황할 때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볍게 막았다가 다시 손을 뒤집어 손등으로 입을 막음으로써 가슴이 마구 뜀을 강조한다. 눈은 ‘껌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천천히 감았다가 뜸으로써 영혼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설정:‘쌍치’의 상승효과

아무것도 모르는 척

비만 맞아도 앓아눕는 연약함과 불치병은 기본. 알츠하이머병이란 ‘불치병’으로 인해 기억이 사라지면서 이번엔 ‘전 아무것도 몰라요’란 표정까지 구사한다. ‘불치’와 ‘백치’가 합쳐진 ‘쌍치’의 시너지효과가 발생하는 것. 귀엽게 찡그리며 “오우, 저 먼지…”하며 위생을 강조한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오줌을 마치 맑은 샘물처럼 ‘도로로록’ 떨어뜨린다.

○대사:더듬기의 미학

순진한 척

말을 더듬어 우유부단하고 순진한 느낌을 준다. 유부남에게 버림 받은 뒤 머리를 싹둑 자르러 미장원에 갔다가도 “어, 언니. 요, 요기(어깨)”하면서 한참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답은 늘 “예”가 아닌 “아, 예. 에, 예예”로 한다. 대사는 직설법보다는 상상 가능한 최고의 예쁜 비유를 쓴다. 정우성에게도 “이 나이에 치매래”란 말 대신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들어있대”라고 속삭인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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