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옥중편지를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떠오르더군요. 제가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았던 것은 막 대입고사를 마친 무렵이었을 거예요.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애매한 위치, 앞에 놓인 길고 긴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지요. 그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저에게, 혼자 침잠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의 고요한 사색과 투명한 성찰의 순간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글의 내용 못지않게 감동적인 것은 이 글들이 손바닥만 한 작은 엽서 위에 씌어졌다는 사실이었어요.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엽서를 보내셨는지요? 그때까지 저는 엽서란 먼 여행지에서 이국의 풍물을 담아 보내거나, 지인에게 새해인사를 전하는 용도인 줄로만 알았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엽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제한된 형식 속에 자신의 전부를 깨알 같은 글씨로 한자 한자 꾹꾹 새겨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아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어둠을 견디게 해 주는 유일한 빛이었을 테지요. 아름답고 아픈, 그리고 소박한 그 엽서들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은 너무나 ‘자유롭게’ 감정과 정보를 주고받는 이 편리한 ‘e메일의 시대’를 돌아보게 합니다.
선생님, ‘갇혀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감금의 징벌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변천의 시간을 거쳐 왔겠지요. 혹자는, 역사를 통해 인류 문명은 점점 더 정교한 방식으로 ‘사람을 가두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몸’이 갇히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의 바깥에 있는 저 역시도 스스로가 무엇엔가 갇혀 있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으니까요. ‘마음의 감옥’이라는 제목의, 김원일 선생의 단편을 읽으면서 가슴 뻐근한 충격과 감동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병상의 감옥에 갇혀 죽어가는 아우를 위해 침대를 끌고 그곳을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선생님, 오늘 저는 저 자신에게 ‘네 마음속의 감옥을 그렇게 돌파하고 나갈 용기가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저를 가두고 있는 모든 것들, 혹은 저를 가두고 있는 ‘스스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힘이 제 안에도 숨겨져 있을까요?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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