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나비효과’를 보고

  • 입력 2004년 11월 25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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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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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한 번 되돌려 보고 싶은 순간이 언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어느 날을 이야기할 것 같다. 5공화국 말기, 당시 우리 반에는 이미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과 교류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신촌에서 열린 비밀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 제안에 매혹되었지만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거절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했다는 자괴감에 또 며칠간을 시달렸다. 그때 거길 나갔더라면 나는 지금과 좀 다르게 살고 있었을까?

상영 중인 영화 ‘나비효과’는 그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에반(애슈턴 커처)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들을 하나씩 되돌려 사랑하는 이들을 불행에서 구하고자 한다. 그의 기억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일관된 내러티브에서 단절되어 있다. 그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내러티브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뭔가 바꾸려고 할수록 결과는 점점 더 끔찍해진다. “애초부터 켈리(에이미 스마트)와 친해지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근원적 가정을 한 뒤에야 가장 나아지지만, 그 이후를 알 수는 없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제목의 원래 뜻과는 달리, 오히려 ‘하나의 사건만을 바꾸어서는 삶의 큰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 보듯, 에반이 켈리의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사건 하나만으로는 그가 불행해지게 된 이유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 사건은 어쩌면 켈리의 가족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 즉 폭력성의 유전자, 어머니의 부재, 알코올과의 관련성, 그리고 외부의 상처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주기 어려운, 에반의 가족이 갖고 있는 우울과 좌절 등이 모두 개입된 결과다. (실제로 성적 학대를 받은 아동들의 많은 사례는 그 일이 단지 ‘사고’가 아니라 이런 여러 수위의 취약성을 반영하는 결과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은 수많은 시간과 공간이 복잡하게 얽힌 매트릭스의 한 좌표를 점유하는 일이다. 내가 행하고 겪는 일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모든 행동과 생각에도 어떤 연결고리는 존재할 수 있다. 아마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것은, 그 인과관계의 도미노에서 벗어난 일이 벌어질 때를 칭하는 게 아닐까.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이 말이 인생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절망감을 보상하기 위한 변명이나 합리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삶의 기저에 흐르는 복잡한 인과 관계의 불가해성을 인정하자는 지혜의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 모임에 나갔다면 나는 지금과 달라졌을까? 아니면, 중고교 시절에 소문난 날라리로 살았더라면? 의대에 가는 대신 인류학과나 철학과에 갔더라면? 스무 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넷쯤 낳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 가정하기 이전에, 나는 아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금의 내 선택이 항상 옳았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선택은 그 순간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너무도 많은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한 끝에 내려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을 내리는 것 자체가 ‘나비효과’의 결과물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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