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지붕 낮은 집’…아빠의 어린날 한번 볼래?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6시 37분


◇지붕 낮은 집/임정진 지음/240쪽 8000원 푸른숲(중고생)

그 시절, 그 골목의 청소년에게도 행복이 있었을까?

이 소설은 1970년대 서울의 어느 가난한 산동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소녀와 그 이웃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풍경화다.

21세기의 10대에게 1970년대는 ‘빛의 속도’로도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절일지도 모른다.

요즘 10대가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통해 경험해 볼 수 있는 과거의 최대치는 1980년대(‘말죽거리 잔혹사’, ‘해적, 디스코왕 되다’) 정도일 테니까.

1970년대는 현재 10대인 청소년들의 부모세대가 10대 청소년이었을 시절이다. 이 소설은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가 자기만 한 나이였을 때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날이 ‘업그레이드’되는 휴대전화, 컴퓨터 게임, MP3, 메신저를 부모 세대가 낯설어 하듯이, 요즘 청소년들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1970년대 모습에 생경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브리사’, 미8군에서 흘러나온 ‘시레이션’과 오렌지 맛 ‘탱가루’, 황금박쥐, 연탄광, 엑스란 내복, ‘귀밑 1cm’ 머리, 버스 회수권, 30% 혼식 도시락….

여기에 공동변소 앞에 동네 통장이 버티고 서서 똥물 출렁이는 똥지게 숫자를 세고 있는 풍경에 이르러서는 책을 읽다가 코부터 틀어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 판이할지언정 고민 많고 갈등 많은 청소년의 정서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짝 동성 친구와 어울리며 토닥거리기도 하고, 이성 친구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엄마 아빠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를 알게 된다면 청소년과 부모간의 거리는 한 뼘쯤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등 영화로 더 친숙해진 글을 꾸준히 써온 저자는 이번에는 막 중학교에 올라간 열세 살짜리 소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때로는 순진하고, 때로는 영악스러운 주인공을 통해 달동네의 다양한 삶을 풀어냈다. 입가에 웃음 번지게 하는 경쾌한 문체 덕분에 쉽고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마중물을 먼저 넣어야 펌프에서 물을 길을 수 있다’는 것에서 주인공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듯이, 가난한 1970년대 달동네의 일상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도 좋을 듯하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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