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데이트]‘영웅시대’ 이환경씨 “과거 미화라 비판하다니”

  • 입력 2004년 12월 3일 19시 19분


김동주기자
김동주기자
“지금도 경기가 불황이지만 1960, 70년대에는 더 힘들었어요. 그건 50대 이상이 잘 알지요. ‘영웅시대’는 그때를 돌이켜보자는 경제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를 미화하는 정치 드라마로 비판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요.”

MBC 드라마 ‘영웅시대’(월 화 밤 9:55) 집필을 이유로 인터뷰를 기피해 오던 작가 이환경(李煥慶·54) 씨는 정작 기자를 만나자 많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 씨는 “경제적 측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논픽션에 가깝게 다룰 것이며 가족사 등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적 양심으로 보여 줘야 할 부분까지 그리겠다”고 말했다. ‘영웅시대’는 중견 탤런트 최불암과 정욱이 각각 천태산(정주영)과 국대호(이병철)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이 드라마를 예민하게 보는 이들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등장 때문인 것 같다. 그는 1960, 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의 선장이었다. 그 없이 한국의 경제 발전사를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딸이고 박대철 역으로 등장하는 이명박 서울시장도 대선 주자 후보군이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30, 40대들의 비판은 이해할 수 없다.”

―현 정권의 외압은 없었나.

“‘조심해서 쓰는 게 좋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받았다. 물론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운동권은 선(善)이고 기업과 부자는 악(惡)이라는 현 정권의 이분법적 구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현대와 삼성은 과도 있지만 공도 크다.”

―현대와 삼성 측에서는 의견이 없었나.

“현대는 2년 전 자료 요청 공문을 두 차례나 보냈지만 ‘드라마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을 MBC로 보내왔다. 이후 아무 말이 없다. 삼성 측은 한 간부가 찾아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피해를 보면 대응하겠다고 했다. 취재에는 물론 비협조적이다.”

―얼마나 자세하게 묘사할 것인가.

“5년 전부터 자료를 모았다.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후계자 계승과정은 창업주들의 기업관과 철학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사카린 밀수사건,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그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박 전 대통령은 명암이 있는 인물이다.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에서 독재가 나온 것인지, 못살아도 독재는 해선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취재와 제작 과정에 얽힌 일화는….

“현대 쪽 취재를 위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세 번 만났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연락이 힘들었다. 2회에서 탤런트 임채무가 삼성 이건희 회장을 연기한 뒤 삼성 측의 항의를 받았다. 레슬링을 한 사람이어서 대본에 구부정한 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영웅시대’ 이후 SBS에서 박 전 대통령에 관한 드라마를 집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영웅시대’에서 많이 쓰는 것 같아 그만두자고 했다. 재허가 과정을 보니 SBS에서 박 전 대통령 관련 드라마를 방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사극을 쓰겠다.”

○이환경 씨는?

195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나온 뒤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 목재소 일 등을 했다. 1980년 KBS ‘종소리’가 방송 작가 데뷔작이며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겨울바람’이 당선됐다. KBS ‘무풍지대’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SBS ‘야인시대’를 집필했다. KBS ‘전설의 고향’ 50편을 썼다. 2001년 한국방송대상 작가상과 위암 장지연상(방송 부문)을 받았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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