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7시 55분. 조연출 고현주 씨가 컴컴한 무대 뒤를 돌아다니며 외친다.
무대 뒤 3, 4평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서 가장 자리를 넓게 차지한 것은 배우별 의상이 걸려 있는 4개의 행어. 1인당 15∼17벌의 옷이 걸려 있다.
무대 뒤 스태프는 연출, 조연출, ‘전환수’(무대 전환 및 소품 담당) 3명, ‘드레서’(의상팀) 2명, ‘헤어’(분장팀) 1명, 마이크 기술자 1명 등 총 9명.
‘드레서’ 이시내 씨는 “워낙 ‘퀵체인지(Quick Change)’가 많은 작품이라 아예 무대 뒤에 의상실을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막 30초 전. 목욕 가운 차림의 네 배우 이정화, 오나라, 남경주, 정성화가 대기실에서 나온다. 8시. 조연출이 지시한다. “고(go).”
무대 뒤 30도가량 벌어진 틈 사이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옆모습이 보인다. 스태프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 공연 진행상황을 지켜본다.
“라이트 아웃”
무대가 암전(暗轉)된 순간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배우들이 옷을 벗고, 머리를 풀며 동시에 구두를 차서 날린다. 순식간에 상반신용 코르셋과 팬티 차림이 된 이정화와 브래지어 차림의 오나라에게 ‘드레서’들이 다음 의상을 입힌다. ‘전환수’들은 무대 위를 분주히 오가며 다음 세트를 준비한다.
다음 신이 없는 남경주는 여유 있게 옷을 벗는다. 바지를 내리자 직전 장면에서 입은 헐렁한 줄무늬 사각 팬티가 드러난다. 그마저 벗으려는 순간,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말했다. “안에 ‘언더팬츠’(팬티) 입고 있으니 괜찮아요!”
남경주는 다음 장면부터 중년 아버지→홈쇼핑 호스트→피자 배달부→노총각 죄수→주례 신부 등 다섯 개 캐릭터로 잇달아 ‘퀵체인지’를 해야 한다. 가장 바쁜 장면은 1막 마지막 결혼식 신.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 보니 무대 뒤로 들어온 신부 역의 오나라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발에 화관, 귀걸이, 흰 장갑, 부케까지 든 완벽한 신부로 변신하는 데 걸린 시간은 23초.
1막이 끝났다. 휴게실에서 네 배우를 만났다.
“옷 바꿔 입는 게 연기보다 더 힘들어요.”(이정화) “기록 경신하듯 옷 갈아입는 시간을 단축했을 땐 신나요.”(오나라) “마음이 급해서 처음엔 바지 지퍼도 못 올렸어요.”(정성화) “벗은 여배우 몸요? 그냥 물건으로 보이죠.”(남경주)
오후 10시 10분. 관객의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의, 무대 뒤에서는 스태프들의 ‘1인 다역’이 무사히 끝났다.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 8시, 일 오후 3시 7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강홀. 2만∼4만5000원. 02-501-7888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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