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인 A 교수는 석학(碩學)으로 이름났다. 그러나 강의 솜씨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학생들의 눈높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려운 이론을 자기 수준으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도 너무 작아 귀를 쫑긋 세워도 듣기 어려웠다.
고시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B 강사는 변변한 학력은 없지만 강의를 잘하는 것으로 소문났다. 어려운 이론을 수강생 머리에 쏙쏙 집어넣어 주는 능력이 뛰어난 것. 목소리도 낭랑했다. 학생들은 A 교수에게 B 강사와 같은 강의 솜씨가 있다면 환상적인 명강의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다.
기업 경영에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이론들이 수두룩하다.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보면 죄다 그럴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이론과 사례가 좋아도 다른 기업이 그걸 실행하기 어려우면 소용없다.
‘부자기업 vs 가난한 기업’은 아직 기틀을 잡지 못한 ‘가난한 기업’을 위한 책이다. 기초가 약한 학생에게 어려운 이론을 가르쳐 봐야 머리에 들어가지 않듯이 취약한 기업에 대해 ‘부자기업’의 경영 방식을 권유해 봐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의 2위, 3위 기업이 기초체력을 다져 1위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이다.
뒤처진 기업이 앞선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다가는 그나마 확보해 놓은 기존 사업기반마저 경쟁자에게 내주기 쉽다. 또한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곳으로 사업을 벌이다가는 힘이 흩어져 크게 실패할 수 있다. 흔히 “1등만 살아남는다”고 외치지만 2등 없는 1등이 어디 있겠는가. 1등뿐 아니라 2등, 3등도 살아갈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소니는 새 제품을 먼저 개발하는 혁신적인 기업이다. 반면 마쓰시타는 소니를 모방한 제품을 개발하되 효율적인 생산기술과 강력한 유통망을 무기로 삼는 회사다. 마쓰시타도 ‘카피캣(copycat)’이라 불리며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경영전략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고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머리말에서 “가난한 기업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선진기업의 전략을 따라가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 밝혔다.
대체로 최고경영자는 미래를 겨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경영자는 자격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난한 기업’이 허황된 비전에 사로잡히다간 실리를 잃는다.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비전이라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리더십에 대해서도 오해되는 부분이 많다. 훌륭한 리더라면 으레 골목대장, 학교 반장 출신에다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을 가진 인물로 이해된다. 그러나 성공한 경영자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으므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곤란하다.
이 책은 가난한 기업을 부자기업으로 바꿀 수 있는 경영자의 특성으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며 △끊임없이 공부함은 물론 △한결같이 꾸준히 실행하는 사람을 들었다.
인재도, 기술도, 자금도 모자라는 가난한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경영자는 이 책을 통해 적잖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한 경영전략 이론을 B 강사의 명쾌한 강의처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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