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31>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5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비록 조련이 잘 안 되고 제멋대로인 잡군(雜軍)이라 하나, 여러 갈래가 사수(泗水)와 곡수(穀水)를 건너며 모이다 보니 그럭저럭 그 머릿수가 5만이 넘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아직 패왕과 초나라 군사에게 몰려 보지 않아 그 무서움을 몰랐다. 승승장구하는 한왕을 따라 나설 때나 다름없이 용맹을 뽐내며 기염을 토했다.

팽성 북문을 지키다 그리로 쫓기던 한군(漢軍)과 제후군은 그들을 만나자 기세가 되살아났다. 겁먹고 골병든 패군이기는 하지만 저희 머릿수가 또 5만은 되니 그들과 합치면 10만 이 넘는 대군이 되었다.

“이만하면 다시 한번 싸워 볼 만하다. 팽성을 되찾지는 못해도 서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여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하룻밤을 쉬고 남으로 팽성을 에돌아 서쪽으로 돌아가자. 길을 막는 초나라 군사가 있으면 힘으로 쳐부수고 길을 열면 된다.”

은왕(殷王) 사마앙을 비롯한 제후군의 우두머리들은 그렇게 의논을 맞추고 사수 곡수 물가에 진채를 벌였다. 그리고 태평스레 밥을 지어 먹으며 거기서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난전 중에 길을 잃고 얼결에 그리로 따라간 1만여 명의 한군(漢軍)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런데 제후군이 솥과 시루로 삶고 찌던 쌀이 채 익기도 전이었다. 팽성 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떼의 인마가 달려왔다.

“겁낼 것 없다. 적은 방금 저희 도성을 되찾은 터라 많은 추격군을 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또 며칠이나 무리해 달려와 지쳐 있을 것이니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

이번에도 은왕 사마앙이 나서 그렇게 장졸들을 다독인 뒤 스스로 창을 들고 말에 올랐다. 평소 용력을 자랑하던 초적(草賊)과 유민군(流民軍)의 우두머리 몇이 저마다 자랑하는 병기를 꼬나들고 사마앙을 따라 진채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갈래 제후군의 우두머리 되는 장수들이 진문 앞에 나와 보니 초군(楚軍) 선두에서 범 같은 눈을 부릅뜨고 오추마를 박차 달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패왕 항우였다. 거기다가 그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같이 좌우를 에워싸듯 밀고 드는 것은 용저와 종리매를 비롯해 하나하나 익히 알고 있는 초나라의 맹장들이었다. 뒤따르는 군사도 서문과 북문을 공격하던 초나라 군사 거의 모두인 듯, 겁먹은 제후군 눈에는 저희 편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그렇게 되자 먼저 기세가 꺾인 것은 졸개들을 추슬러 싸움을 돋우어야 할 제후군의 우두머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은왕 사마앙은 또다시 초나라에 항복할 수 없는 처지라 죽기로 싸워야 했으나 그게 그렇지 않았다. 이제 다시 사로잡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절망감을 일으켜 기운을 뺐다.

“모두 앞으로! 죽기로 싸워라. 이제 너희에게 더 물러날 곳은 없다.”

사마앙이 그러면서 칼을 빼들었으나 이미 반나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거기다가 패왕의 타고난 감각에 충실한 전법이 이번에도 그 탁월한 효과를 보았다. 먼저 집중된 아군의 기세만으로 적을 압도한 뒤, 적이 난국을 수습할 틈을 주지 않고 휘몰아쳐 승세로 몰아간다. 그런 다음 이긴 흐름을 타고 어지럽게 흩어진 적을 뒤쫓아 사냥하듯 철저하게 들부수어버리는 것인데, 패왕은 호릉에서부터 야전(野戰)에서는 되풀이해 그 전법을 써 오고 있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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