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청소년 역사강좌]제11강 ‘1980년대 탈냉전과 한국’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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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대강당에서 열린 청소년 역사강좌 ‘1980년대 탈냉전과 한국’에 참석한 청중이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대강당에서 열린 청소년 역사강좌 ‘1980년대 탈냉전과 한국’에 참석한 청중이 강규형 명지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냉전(Cold War)은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능력이 있던 미국과 소련을 각각 수장으로 하는 두 진영이 이념을 중심으로 무한 경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냉전은 직접적인 열전(Hot War)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끝난 ‘긴 평화’의 시대이기도 했어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대강당에서 열린 2004 청소년 역사강좌 제11강에서 ‘1980년대 탈냉전과 한국’을 주제로 강연한 강규형 명지대 교수(냉전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냉전 해체의 뒷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가며 300여 명의 청중을 사로잡았다. 다음은 강연 요지.》

● 2차 냉전과 KAL기 피격 사건

1989, 90년에 냉전체제는 붕괴했다. 그러나 새벽이 오기 직전에 가장 어두운 것처럼 냉전체제는 1980년대 초반 심각한 대치 상태에 빠졌다. 이른바 2차 냉전(또는 신냉전)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1970년대 데탕트(긴장완화)의 종언을 가져왔고 2차 냉전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 반공주의자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추구하는 정책을 펴 나갔다.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한 1983년 3월 8일의 연설과 2주 뒤 스타워즈(Star Wars) 계획, 즉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SDI) 천명이 대표적이었다.

레이건의 대(對)소련 강경 방침을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것이 1983년 9월 1일 소련의 대한항공(KAL) 007기 격추 사건이었다. 국제 정세의 긴장이 심화됐을 때 KAL 007기는 부주의하게 소련의 군사요충지 상공을 날았고, 과민 상태의 소련 공군이 과잉 대응하면서 큰 비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냉전체제의 긴장은 더욱 심화됐다. 동서 양측은 상호 체제의 공고화와 합리화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이용했다. 서로 이해하며 더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도 필요 이상으로 커져 갈등 구조가 심화된 것이다.

반면 이 사건으로 긴장 상태가 일단 절정에 이르자 ‘열전’으로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양측이 노력하면서 급격한 안정 상태로 향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공산권의 한계상황과 변화라는 세계사적 조류와 맞물리면서 냉전체제 해체의 싹을 틔우는 역할을 했다.

● 1988년 서울올림픽과 탈냉전

서울올림픽 유치는 당시 지식계와 대학가에서 조소의 대상이었다. 태생적 한계가 있는 전두환 정권이 국민을 현혹하려는 ‘정치 쇼’라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은 세계사에 예기치 못한 영향을 끼쳤다.

KAL기 사건을 전후해 대외적인 정책 변화를 탐색하던 소련은 고르바초프라는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을 추구했다. 소련의 체제 변화 필요성을 절감한 고르바초프는 1985년 집권 이후 꾸준히 변화를 추구했고 1988년경 ‘대내외적으로 대규모 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련의 숨 가쁜 변화와 함께 서울올림픽이 열렸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참여는 새 시대를 표방하는 상징이 됐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 시도가 실패하자 공산권의 보이콧을 주장했지만, 고르바초프는 김일성 주석에게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는 북한이 ‘소련 주도의 사회주의 동맹의 성격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사건’이었고, 고르바초프가 세계를 놀라게 한 ‘조금 더 평화로운 세계로 가는 또 다른 신호’였다. 서울올림픽 이후 탈냉전의 속도는 빨라졌다. 1988년 12월 유엔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공개적으로 냉전의 종식을 천명했다.

이러한 성공은 한국이 동유럽 국가들과 수교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동유럽권의 해체와 공산주의의 종언에 제한적이나마 도움을 주었다. 자본주의 세계의 변방 정도로 알려져 있던 한국의 경제적 성공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에는 ‘삼키기 힘든, 그러나 삼켜야 할 쓴 약’이었다.

:강규형 교수는:

강규형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40·사진)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석사, 오하이오대에서 20세기 현대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오하이오대 현대사연구소 연구원,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저서 ‘Ending the Cold War in Korea’(편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공저)가 있으며, 논문 ‘한국과 냉전: 제2냉전 성립기의 KAL기 격추사건과 그 종식기의 서울올림픽이 냉전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제11강서 쏟아진 질문들▼

강연이 끝나자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냉전체제는 물론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한 중고교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민지윤 양(17·이화여자외국어고 2년)은 “올림픽 공동 개최 시도가 실패한 것 외에 북한이 서울올림픽 참가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강사인 강규형 교수는 “소련의 변화와 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1987∼88년은 북한 지도부에 악몽의 시기였다.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잔치에 들러리를 설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참가 자체가 자기 체제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 올 수도 없었다”며 “87년 KAL기 격추 테러는 서울올림픽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지현 양(18·의정부여고 3년)은 “83년 KAL기 격추사건이 왜 ‘냉전체제 해체의 싹’이 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강 교수는 “냉전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긴장이 급박하게 고조하다 전쟁으로 치닫지 않고 급격한 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1962년 미국과 소련의 쿠바 위기가 좋은 예다. 전쟁 직전까지 갔지만 미-소 수반 간에 최초로 ‘핫라인(hot line)’이 설치될 정도로 안정화됐다. KAL기 사건으로 양측의 긴장이 급속히 고조됐지만 소련 내의 체제 변환과 맞물려 급격한 안정의 흐름을 탔다.”

이경은 양(15·윤중중 3년)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동유럽 공산권과 소련 내부의 반대는 없었느냐”고 질문했다.

강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이 진주해 만든 정부가 많았던 동유럽권 국가들은 일부 집권층만 빼고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가장 반겼다. ‘시나트라 독트린’이라고 불린 그의 주장은 ‘소련은 소련의 길을 갈 테니 너희는 너희의 길을 가라(My Way)’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소련 보수파는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감금하기도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고양외고 김민석군-김수미 양 대화▼

고양외국어고 3학년 친구인 김수미 양(왼쪽)과 김민석 군은 “역사강좌를 통해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굴렁쇠를 굴리며 잔디밭을 지나가는 장면이 기억나요.”

고양외국어고 일본어반 3학년 친구인 김민석 군(18)과 김수미 양(18)의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하게나마 ‘굴렁쇠’가 거의 전부다. 크면서 자주 들은 올릭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 정도가 귀에 익었을 뿐이다.

▽수미=학교에서 근현대사와 국사 과목을 모두 선택해서 들었는데 ‘지금의 역사’가 부족해 아쉬웠어. 오늘 강의처럼 살아 있는 현대사를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잖아.

▽민석=그래. 서울올림픽에 대한 책이 있다는 것도 이번 강연을 통해서 처음 알았어.

▽수미=대한항공(KAL) 007기 격추사건이 한 시대의 흐름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큰 수확이야. 단편적인 사건이라도 그 시대의 맥락에서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어.

▽민석=냉전이 대립만은 아니었다는 해석도 신선했어. 또 냉전체제의 해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라는 지도자의 노력과 미소 두 진영 내부의 정치적 흐름을 세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지.

▽수미=그동안 대학에 다니는 언니한테서 접한 역사책은 좀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었는데 청소년 역사강좌를 들으면서 역사에 대한 여러 관점이 있다는 걸 배웠어.

▽민석=9월 수시에 붙고 나서부터 이 강좌를 들었는데, 집에 계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어. 6·25전쟁을 직접 겪으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얻을 수 있었지.

▽수미=대학에 가서 역사를 공부할 때 여기서 들은 강좌가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민석=나도 교과서에서 접할 수 없는 부분들이어서 좋았어. 하지만 역사강좌가 다음 주로 끝난다고 하니까 좀 아쉽네.

▼이번 주 토요 역사강좌 안내(제12강)는 마지막회입니다▼

▽일시=18일 오후 3시∼4시 반

▽장소=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

▽주제 및 강사=‘역사 속의 젊은 그들-19세기와 21세기’(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제12강의 이해를 돕는 책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김상배 외 지음·풀빛·2004년)

△변화하는 세계 바로 보기 (하영선 엮음·나남·2004년)

△서유견문(유길준·서해문집·2004년)

■강좌에 관한 사항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02-920-7089)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없음.

■지금까지의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2004 청소년 역사강좌' 코너에 실려 있습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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