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브리짓 존스를 위한 변명

  • 입력 2004년 12월 15일 17시 48분


사진 ①
르네 젤위거가 11kg이나 불린 몸무게 66kg의 여성 브리짓 존스로 등장하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은 무척 영악한 전술을 구사한다. ‘통통한’ 브리짓에다 대다수 여성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3일 자신의 신체 조건이 브리짓 존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28세 직장여성 3명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 브리짓은 뚱뚱한가 풍만한가?

A, B, C=풍만해. 브리짓은 가슴 엉덩이 배는 살쪘지만 팔과 다리는 쫙 빠진 ‘애플 셰이프(Apple Shape·몸이 사과모양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 비만체형이야(사진①). 다리는 옥주현(가수)처럼 날씬해서 미니스커트를 입잖아. 다리 가늘고 가슴 큰 여자는 뚱뚱한 게 아니라 풍만한 여성이야. 뚱뚱함으로 가는 시발점은 젖가슴과 배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손가락 마디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지.

A=만약 브리짓의 가슴이 작았다면 지금처럼 매력적이었을까.

B=살찐 여자치고 가슴 작은 여자는 없어. 마크(콜린 퍼스)가 브리짓을 사랑하는 이유도 아마 자신의 2세에게 충분히 젖을 주고 싶은 동물적 본능 때문 아닐까. 마크는 결혼은 꺼리면서도 브리짓의 임신은 고대하잖아.

C=브리짓은 섹시하게 보이려는 교묘한 위장술을 써. 머리를 느슨하게 뒤로 묶으면 목선이 살아나고, A라인에 하이웨이스트(high waist) 원피스를 입어 뱃살이 두드러지지 않게 하며, 가슴 계곡이 보이는 깊이 팬 옷을 통해 배에 쏠리는 시선을 가슴으로 돌리지.

● 마크(애인·신사적 변호사) vs 다니엘(집적대는 섹시한 남자)

사진 ②

A=여자와 동침할 때도 자기 팬티를 개켜놓는 마크(사진○2)는 정확하고 실수 없는 남자지만 정 떨어져. 브리짓이 마크를 사랑하면서도 멀게 느끼는 이유가 되지.

C=난 팬티를 다림질해 입거나 입고 난 팬티를 빨래 통에 넣을 때도 사각형으로 개어서 넣는 남자를 본 적 있어. 마크는 준수해.

B=다니엘(휴 그랜트)은 바람둥이이지만 뚱뚱한 여자가 마음에 쏙 들어 할 만한 얘기만 해. “자기는 섹시하고 날 웃게 해” “당신은 사실 최고의 섹스 파트너였어” “오, 이 왕팬티 섹시한데. 나의 귀염둥이” “내 방에서 별을 함께 보지 않을래?” 같은 말들….

C=남자가 왕팬티 보고 흥분할까?

B=어차피 다니엘은 브리짓을 진정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밥만 먹고는 살 수 없으니깐….

● 브리짓이 뱃살을 창피해하는 이유

사진 ③

B=브리짓은 마크에게 뱃살을 안 보이려고 이불 뒤집어쓰고 옷을 입어. 가장 보여주기 싫은 살이 뱃살이야. 뱃살은 오랜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나오는 살이니깐. 나는 얼굴, 가슴, 허벅지, 엉덩이, 팔뚝이 차례로 살찐 다음 최종적으로 뱃살이 찌지.

C=뚱뚱해지면 브리짓처럼 소심해지고 의심도 많아져. 도서관에서 낮은 곳에 꽂힌 책을 빼내는 것조차 꺼리게 돼. 남자가 내 손을 잡을 때조차 손이 너무 두껍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돼서 안 잡기도 해.

A=내 남자친구는 ‘뱃살 마니아’야. 내 뱃살을 만질 때마다 말랑거리고 쏙쏙 들어간다면서 좋아해. 가슴이 하나 더 있는 거 같다나?

C=하지만 너랑은 절대 결혼 안할 걸?

B=뱃살마저 사랑해 주는 마크 같은 남자가 있을까? 영화와 달리 섹스는 차가운 현실이야. 배경음악이 깔리거나 창밖에 눈이 오는 게 아니거든. 정적 속에서 서로의 몸을 바라보는 냉엄한 시험대인 것이지.

C=마늘 먹고 뽀뽀하는 것과 같아.

A=하지만 브리짓이 아침에 일어나 옆에서 자고 있는 마크를 빤히 쳐다보는 그 순간(사진③)은 아무리 영화라 해도 여자가 느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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