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전거를 넘어지지 않고 혼자 탄 날, 유치원에서 처음 앞에 나가 발표를 하던 날, 처음 혼자서 가게에 가 물건을 사본 날….
어른에게는 기억마저 가물가물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 시절엔 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었던가!
아이들이 겪는 수많은 ‘처음’ 중에서 가장 흥분되고 설레는 경험은 처음으로 엄마 아빠 곁을 떠나서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아닐까. 이 책은 그런 아이가 느끼게 되는 설렘과 두려운 마음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인근에 사는 레지 집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자게 된 ‘나’는 정말 신이 났다.
‘레슬링도 한판하고, 베개싸움도 하는 거야, 그 다음엔 마술도 해 보고, 보드 게임도 하는 거지. 또 도미노게임을 하고, 돋보기를 가지고 놀아야지. 그리고는 불을 다 끄고 귀신 얘기도 하는 거야…. 아이 좋아라!’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과연 내가 곰 인형 없이 잘 수 있을까?”
레지에게 슬쩍 물어 봤다.
“너네 집, 밤에 아주 깜깜해?” “어.”
“아주, 아주 깜깜해?” “어.”
이쯤 되면 설렘은 어느새 작아지고 두려움은 커진다. 귀신 얘기를 한 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아이에게 만만치 않으니까. 그렇다고 곰 인형을 가지고 가면 아기라고 웃지 않을까? ‘빠빠’라는 인형 이름을 듣고는 바보 같다고 웃지 않을까?
“웃지 않을 거야.” 엄마가 그랬다.
“웃지 않을 거다.” 아빠도 그런다.
하지만 누나는 안 그랬다.
“레지는 웃을 거야.”
이럴 때 아이들은 누구 말을 들을까? 물론, 엄마 아빠 말이 아니라 ‘같은 세대’인 누나 말을 듣는다. ‘나’는 무서워도 곰 인형을 두고 가기로 마음먹는다.
처음 친구네 집에 자러 간 날. 마침내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지고, 어둠 속에서 두 꼬마는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얘기를 시작한다. 순간, 레지가 일어나더니 서랍장에서 곰 인형을 꺼낸다.
“너 혹시 날마다 그 곰 인형 안고 자니?”
“어.”
“이름도 있니?” “어.”
“이름이 뭔데?”
웃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듭 받고서야 레지는 말한다. “푸푸.”
‘나’는 벌떡 일어나 우리 집으로 달려간다.
“아무래도 ‘빠빠’를 데려가야겠어.”
얼른 ‘빠빠’를 데리고 레지 방으로 다시 가서 말했다.
“나한테도 곰 인형이 있는데 얘 이름도 가르쳐 줄까?”
하지만 레지는 “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푸푸’와 함께 이미 쿨쿨 잠들었으니까!
태연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걱정투성이인 아이들의 심리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유머 넘치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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