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저자들이 2002년 영문으로 출간한 이 책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책이 한국 경제의 특수성과 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영미식 모델을 적용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소진시켰다고 비판했다.
이 책이 출간된 2002년만 해도 한국 경제는 IMF 관리체제를 벗어나 부활의 날갯짓이 한창일 때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한국 경제는 저자들이 예언한 저성장 고실업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모델을 좇기보다는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한 국가 주도의 2단계 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국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경영의 투명성과 재벌해체론을 주장하는 경제개혁론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펼쳐왔다. 저자들은 이를 군부 통치와 발전주의 모델을 샴쌍둥이처럼 바라본 잘못된 인식의 결과라며 양자를 모두 비판한다.
이런 주장은 학계 경제계 정치계에 첨예한 논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진다 해도 저성장 고실업의 늪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한국 경제에 대한 장기 비관론도 이 책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책의 장점은 흔히 한국병으로 인식돼 온 ‘정실 자본주의’나 ‘대마불사론’ 등이 과장된 반면 영미식 모델 채택이 실제 한국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 통계와 풍부한 사례 비교를 통해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창비의 염종선 인문사회출판팀장은 “학술성이 강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출간 한 달 반 만에 1쇄 3000부가 모두 소화되고 2쇄를 인쇄 중”이라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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