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38>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21일 18시 4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께서는 자방 선생과 더불어 중군을 맡으시어 우리가 놓을 큰 덫의 미끼가 되어 주십시오. 수레를 버리고 말에 올라 몸소 진두에 서시면 우리 장졸의 사기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항왕을 우리가 바라는 곳으로 꾀어 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항왕이 우리 덫에 걸려들면 뒷일은 신이 맡아 처결하겠습니다.”

한신은 먼저 한왕에게 중군을 맡기고 다시 차례로 장수들을 불러 할 일을 주었다.

“노관과 하후영은 3000 정병으로 대왕의 갑주와 투구가 되고, 역상과 근흡은 3만 군사로 중군이 되어 대왕을 호위하라. 또 주가(周苛)와 기신(紀信)은 따로 1만 군사를 이끌고 중군의 위급에 대응한다. 새왕(塞王)과 적왕(翟王)께서는 3만 제후군 군사를 이끌고 우군(右軍)이 되고, 한왕(韓王)은 부관(傅寬)과 더불어 3만 군사를 이끌고 좌군(左軍)이 되어 내가 거느릴 전군(前軍)의 뒤를 받쳐주시오.

나는 왕릉(王陵) 장군과 함께 3만 군을 이끌고 전군이 되어 이 싸움에 앞장을 설 것이오. 그 밖에 주설(周설)과 장창(張蒼)이 각기 1만 군을 이끌고 유군(遊軍)으로 변화에 따라 움직일 것이고, 관동(關東)에서 우리를 따라온 제후 가운데 병세를 유지한 이들도 각기 본부(本部) 인마를 이끌고 별동대가 되어 우리 진세를 두텁게 할 것이오.”

얼른 듣기에 한신의 그와 같은 배치는 흠잡을 데 없이 짜임새 있고 든든해 보였다. 한왕의 지우(知遇)를 입고 처음 한중(漢中)을 나와 삼진(三秦)을 평정하던 때의 날카로움과 번쩍임이 되살아난 듯했다. 하지만 한왕 유방의 느낌은 그렇지가 못했다.

“아아, 주발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장수들과 제후 왕들이 대장군 한신의 명을 받들어 분주히 인마를 움직이는 것을 보던 한왕이 그렇게 불쑥 탄식처럼 말했다.

곁에 있던 진평이 그런 한왕에게 물었다.

“대왕을 떠나 있는 장수가 한둘이 아닌데 하필이면 주발이십니까?”

“나와 함께 패현(沛縣)을 떠난 맹장들이 모두 곁에 없어 해보는 탄식이오. 번쾌가 추(鄒) 노(魯)로 떠난 것은 한달이 가깝고, 관영과 조참이 소성을 지키기 위해 과인의 곁을 떠난 지도 보름이 넘었소. 하지만 주발은 엿새 전 곡우(曲遇)의 도적을 잡으러 가기 전만 해도 팽성에 있지 않았소? 그만 여기 있어도 이렇게 앞이 허전하지는 않을 것이오.”

한편 그때 패왕의 군사는 한군의 진채에서 동쪽으로 20리쯤 되는 곳에 이르러 있었다. 패왕은 한군데 훤히 트인 들판에다 군사를 멈춰 잠시 쉬게 하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일찍이 한신은 긴 칼을 차고 숙부와 과인을 찾아왔으나 기실은 겉만 우람한 허풍선이에 지나지 않았고, 큰소리로 병진(兵陣)의 일을 떠들어댔지만 입만 살아있는 서생(書生)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숙부와 과인은 그를 낭중(郎中)보다 높게는 쓰지 않았다. 미루어 보건대, 지금도 한신은 공론(空論)으로 복잡하기만 한 진세를 잔뜩 벌여놓고 무슨 대단한 그물이라도 쳐둔 양 으스대고 있을 것이다. 과인은 맹렬한 전투력으로 그 공론을 대신하고, 단순함으로 그 복잡함을 제압하려 한다. 우리에게는 세밀하고 복잡한 전략 따위는 없다. 때를 보아 움직이고 흐름을 따라 나고 든다. 장수들은 적의 허세에 현혹되지 말고 단도로 곧장 찌르듯(單刀直入·단도직입) 적진으로 뛰어들어 염통을 후비듯 한 싸움으로 적의 숨통을 거둬 버리자!”

그리고는 누가 앞서고 누가 뒤따를지조차 일러주지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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