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한류의 동력을 평가하는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았다. 한류를 이끈 대중문화에 대한 홀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다.
한류는 1990년대 중후반 ‘클론’ ‘베이비복스’ ‘NRG’를 비롯한 댄스 음악과 ‘별은 내 가슴에’ 등 트렌디 드라마에서 출발했다.
국내에서는 이에 대해 “섹시 코드를 앞세운 천박한 자본주의의 거품이자 일시적 유행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댄스 뮤직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자’는 컴퓨터 음악이고, 트렌디 드라마도 신세대의 사랑 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겨울연가’도 국내에선 수많은 인기 드라마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한류를 보는 눈이 해외에서는 다르다. 중국에서는 한류가 문화뿐만 아니라 음식점 미용실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전현택 국제마케팅팀장은 “중국 측은 한국인의 감성 마케팅과 기획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댄스 음악은 멕시코에서도 전자오락기기 ‘펌프잇업’을 통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게 한류뿐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과거에 대한 자학(自虐)으로 우리의 미덕과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해 온 것은 아닐까.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00년에 쓴 책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1960년대 초 가나와 한국의 경제 상황이 비슷했는데, 30년 뒤 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반면 가나는 그렇지 않다”며 “검약 근면 조직 규율 등 한국인의 가치와 문화가 발전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요즘 같으면 ‘수구(守舊)’로 폄훼될 만한 해석이다.
기자가 출장 중 비행기에서 만났던 한 호주인은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들은 거의 한국인들”이라며 “소란스럽긴 해도 그 에너지와 호기심이 한국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두리번거리는 한국인을 꼴불견이라고 여겼던 기자는 그의 말에서 발상의 전환을 실감했다.
한류를 비롯해 우리 것을 보는 외국의 눈과 우리의 눈이 이렇게 다르다. 그에 대해서는 6·25전쟁 등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헐뜯기, 오랜 외세에 시달린 탓으로 우리 것에 대한 자학이 습관화됐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있다.
지금도 한류 자체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많다. 한국 문화산업의 열악한 제작 기반과 소재의 빈곤 등이 그 근거다. 그러나 한류 초기 상황은 더 열악했고 가수 보아처럼 치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일본 정상에 오른 경우도 있다. 특히 올해 4월 프랑스 칸의 세계프로그램견본시(MIPTV)와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이 됨으로써 한류는 유럽 진출의 기회를 맞는다.
올해 한류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한국인의 가치와 문화를 보다 역동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설익었지만 외국인의 눈에 보이는 그것을 우리는 ‘한류 담론’을 통해 찾아야 한다. 한류는 우리를 긍정하게 하는 신사고(新思考)의 물결이다.
허 엽/문화부 차장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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