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택권]겉으론 ‘통학거리’… 속내는 ‘학교質’

  • 입력 2005년 1월 3일 17시 37분


도로를 마주 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신시가지 내 Y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바로 앞 Y초등학교를 두고 300m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박주일 기자
도로를 마주 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신시가지 내 Y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바로 앞 Y초등학교를 두고 300m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박주일 기자
▼서울▼

서울 강서교육청 관내의 양천구 목동 S중학교는 교육여건이 낫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교 배정 문제로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학교 중의 하나다.

이 학교에 배정될 수 없는 인근 Y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들은 지난해 12월 강서교육청을 찾아 자신들의 아이들도 S중에 배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줄곧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강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2월 중학교 배정에서 D아파트에 사는 이 초등학교 졸업생 전원이 S중에 배정되지 않았다”며 “그러자 학부모들이 교육청과 구의원 시의원에게 계속 민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에 신축된 D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은 단지 안으로 배정되지만 중학생은 단지 밖에 배정된다. 단지 안에 있는 S중은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아 면학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Y초등학교 졸업자는 대부분 S중으로 진학하는데 우리 아이들만 배정에서 제외돼 친구도 없어지게 됐다”며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강서교육청은 “중학교 배정은 2월 회의에서 인근 아파트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할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입주가 시작된 서울 양천구 H아파트 주민들은 “도로 건너편의 Y초등학교까지는 50m이지만 배정학교인 J초등학교는 300m가량 떨어져 있다”며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강서교육청은 “초등학생의 통학거리는 1km라 문제가 없다”며 “Y초등학교에 배정되는 주소지는 개교 이후 한번도 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집 앞 학교 놓고 원거리 배정

서울 북부교육청 홈페이지엔 지난해 말부터 배정을 둘러싼 문의와 민원이 눈에 띄게 늘었다.

도봉구 창동 D아파트의 한 주민은 “지난해 고입 배정에서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사는 중학교 졸업생 3명 중 1명도 단지 바로 앞에 신설된 고교에 배정되지 못했다”며 “집 근처 학교를 두고 먼 거리의 고교에 배정되는 불이익을 받지 않게 배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원구 H중 관계자는 “지난해 고교 배정 이후 학부모들이 ‘집 근처에 D고, C고 등이 있는데 아파트 앞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도 없는 S고에 배정됐다’며 항의했다”고 전했다.

○ 학교 간 학력차가 원인

배정을 둘러싼 갈등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원거리 배정이 문제는 아니다.

한 중학교 교사는 “학부모들이 특정 학교 진학을 꺼리는 것은 거리가 멀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명문대 진학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우수 학생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에 배정받으면 크게 낙담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학부모 박모 씨(42)는 “중3 자녀가 있는데 인근에 대학 진학률이 높은 고교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교가 섞여 있어 걱정스럽다”며 “원하지 않는 학교에 배정되면 이사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부동산업소들은 공공연하게 ‘○○아파트에 거주하는 여학생은 전원 △△여고에 배정된다’고 안내하기도 한다. 중고교 배정 문제로 서울 강남 학군뿐 아니라 명문 학교 근처의 집값이 들썩이는 것도 대학 입학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2008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이 상대평가로 바뀌어 강남이 불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강남으로의 학생 전입이 줄었다고 하지만 학교 배정을 둘러싼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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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일산-분당▼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 2002년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경기지역 신도시에서도 중고교 배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비평준화 시절에 선호, 비선호 학교가 확연히 갈리는 데다 인구가 급팽창하면서 배정을 둘러싼 시비가 잦았다.

분당과 일산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지원 후추첨’으로 고교를 배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비평준화 시절 명문으로 통하던 고교에 지원자가 몰리고 1지망 학교에 배정받지 못할 경우 3지망 또는 5지망까지 밀려 엉뚱한 학교에 배정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통학거리도 멀고 진학률까지 낮은 학교에 배정될 수도 있어 ‘로또 배정’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딸이 2002년에 학부모들이 가장 꺼리는 고교에 배정된 이모 씨(50·고양시 일산구)는 “비평준화 때처럼 원하는 학교에 지원해 시험을 보거나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배정됐으면 지금처럼 학교에 불만은 없을 것”이라며 “성적, 근거리, 학생의 희망 중 어떤 것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평준화 시절과 달리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은 운에 맡겨야 하지만 그렇다고 근거리 배정도 아니라는 것.

이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경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예 지원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최고 명문’을 피하고, 차 순위 선호 학교를 우선 지망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고교평준화 도입 이후 근처에 원하는 학교가 없는 학생들은 좋은 학교에 지원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성남시는 2005학년도 중학교 배정에서 1지망은 가장 가까운 학교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했다.

2004학년도 배정에서 분당지역에서 1지망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학생이 600여 명에 이르는 데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3∼5지망 학교로 배정돼 민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신도시 인구가 폭증하면서 지역간 경제력을 차별하는 학부모의 이기주의도 한몫하고 있다.

경기 광주시와 용인시의 초등학교 졸업생이 배정되는 성남시 분당구의 한 중학교에선 지난해 7월 예정됐던 증축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분당 학부모들이 “광주 용인 학생들이 늘면서 ‘콩나물 학교’로 변해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며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성남=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광주 전남▼

광주 생활권인 전남 나주시 남평읍 남평초등학교의 6학년 학생은 전체가 60여 명에 불과하다. 1학년 때보다 70명이나 줄었다.

학생들이 광주가 나주보다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보고 광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 지역 초등학교는 대부분 6학년만 되면 전체 학생의 60∼70%가 빠져나간다.

나주시 전체로 보면 학교 문제로 광주로 이사하는 인구가 한 해 1500∼2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신정훈(辛正勳) 나주시장은 남평중 학생에 한해 나주뿐 아니라 광주시내 고교로도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고교공동지원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전남에서 광주 인근인 장성군 남중과 담양군 고서중, 한재중 등 3곳이 광주와 ‘고교공동지원제’를 실시 중인 선례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사 여부는 불분명하다. 나주와 비슷한 형편인 다른 지역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광주시교육청이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

남평중 학생들의 광주시내 고교 진학을 허용하면 나주 전 지역은 물론 광주 인근의 담양 화순 함평 장성 등지에서도 공동지원제 또는 공동학군제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그동안 이들 지자체도 학교 때문에 광주로 유출되는 인구가 많아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만큼 광주와의 공동학군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광주 자체도 학교선택권 갈등이 만만치 않다. 시내 전역을 하나의 학군으로 묶어 정원의 60%는 선지원을 통한 추첨으로, 나머지 40%는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학생들을 강제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호 고교가 일부 지역에 편중돼 학군을 2개 이상으로 나누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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