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선생님은 어디서 들으셨나요? 해마다 그렇듯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습니다. 화려하고 떠들썩한 방송국 연예 시상식 사이에 막간광고처럼 끼어든 보신각 타종현장의 실황 중계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번에는 유독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캄캄한 밤하늘로 쏘아 올려진 색색의 축포들 때문이었을까요.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경건한 의식이라기보다는, 밝아 올 ‘카니발의 아침’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한바탕 이벤트성 축제로 여겨져 공연히 우울했지요. 익숙히 보아온 광경에 갑자기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지난 연말 불현듯 밀어닥쳐 남아시아 곳곳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 지진해일(쓰나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캄캄해지고 대기는 메뚜기 떼의 날개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밭 위로 소나기처럼 떨어져왔다. 메뚜기 떼가 내려앉은 밭은 잎사귀 하나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펄 벅의 ‘대지’의 한 부분을 읽으며 다시 전율합니다.
선생님, 자연의 대재앙 앞에 사람은 얼마나 작은지요. 무력하고 남루한지요. 문명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의 오만에 불과한 걸까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찾은 휴양객들도, 바다를 일상의 공간으로 여기던 원주민들도 모두 그 ‘바다’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휑해집니다.
사랑하는 이와 생활터전을 한순간에 빼앗기고는 그저 망연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곳 난민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 지역 출신의 많은 분들을 이미 우리나라 거리 곳곳에서 마주쳐 왔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 중에서도 이번 참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해요. 이주노동자에 관한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엉뚱하게도 저는 영어로 씌어 미국에서 발행된 장편소설 한 권을 떠올리곤 합니다.
재미 한인 작가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이 그것이에요. 소설의 주인공은 1.5세대의 교포로 미국 속에 사는 이방인입니다. 생득적으로 백인 주류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 아닌 아웃사이더로 살아가지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부자유스러우며 ‘남과 다른 나’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주인공 위로 이 땅의 수많은 이방인들의 모습이 아프게 겹쳐집니다. ‘바다는 병이고 죽음이기도 하지만 또한 회복이고 부활이기도 하다.’ 김춘수 시인의 말을 그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전하렵니다.
선생님, 이번 달부터 교환교수로 미국의 한 대학에 가시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이곳에 ‘집’을 두고 떠나 그곳에서 ‘타인’의 삶을 시작하신 감회가 어떠신지요? 선생님이 보내주실 그곳의 겨울바람 냄새와, 봄꽃 피는 소리, 달콤하고 쌉쌀한 이국생활의 발견들을 기대하겠습니다. 지구 어느 곳에서나 내내 강건하세요.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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