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
뒷간은 가까우면 냄새가 나고, 사돈집이 가까우면 말썽이 많이 생기기 쉽다는 말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고남석(47) 한경희 씨(41) 부부는 ‘사돈’집이 따로 없다. 장모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사는 것이다. 얼마나 말썽이 많을까?
한 씨는 “말썽은커녕 저희 부부가 나란히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된 데는 ‘두 어머니’의 힘이 컸다”며 웃는다.
청소기 제조업체 ㈜한영베스트 대표인 한 씨는 스팀으로 걸레질을 할 수 있는 스팀 청소기로 성공한 벤처사업가. 자신의 사업을 하던 고 씨는 지난해 아내의 회사에 합류해 제품개발과 구매 업무를 맡고 있다.
나란히 퇴근한 부부는 “어머니, 아들 왔습니다. 딸 왔어요”하고 인사한다.
집안에서 막내이자 외딸인 한 씨는 1996년 결혼과 함께 친정어머니 박수내 씨(71)와 살면서 살림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맡겼다. 막내아들인 고씨는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이강순 씨(78)를 모셔왔다.
박 씨가 “사돈과 함께 산다니 주위에서 처음에는 불편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나이 들수록 서로 의지가 돼서 좋다”고 말하자, 이 씨는 “살아 온 얘기, 살아가는 얘기를 함께 나누느라 심심하지 않다”고 답한다.
비교적 말을 아끼던 이 씨와 박 씨는 손자들 얘기가 나오자 앞 다퉈 말꾸러미를 풀어냈다. 손자 영철(8·초등학교 1년) 영찬 군(6)은 동네나 학원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
“아침부터 언제 태권도장에 가느냐며 수십 번 물어보네요. 어찌나 태권도를 좋아하는지…하도 나대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박 씨)
“크면 나아지겠죠.”(이 씨)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내가 매를 드는 편이에요.”(박 씨)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말썽을 많이 피우는 편은 아니에요.”(이 씨)
주말이면 손자들과 나들이도 곧잘 간다. 손자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사돈 할머니들은 자연스레 잘 어울린다. 유자차도 같이 만들고 인근 한강 둔치까지 산책도 함께 한다.
한 씨가 시어머니 옆에서 “우리 어머님, 미인이시죠”하고 자랑하자, 고 씨는 “우리 장모님이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데…”라고 화답했다.
박 씨는 사위에 대해 “너그럽다”며 한마디로 평했고 이 씨는 며느리에 대해 “영리하고 예쁘고 성실하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한 씨는 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자신의 복이라며 활짝 웃는다.
“아이들이 부산스럽기는 하지만 먹을 것이 있으면 맨 먼저 할머니들께 드려요. 어른들 챙길 줄 안다는 얘기죠. 말보다 행동으로 예의를 배울 수 있으니 저희 부부가 복을 받은 셈입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며느리라면…한경희 씨의 시어머니 모시기▼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두 번은 대화한다
―시어머니 이불 속에 자주 들어간다
(아무 말 없이 신문이나 텔레비전만 봐도 된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에 모시고 간다
―꾀병도 병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머니 머리를 드라이해 드리거나 눈썹 정리를 도와준다
―귀가 안 좋다면 천천히 크게 이야기한다
―시댁 형제들에게 자주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
▼사위라면…고남석 씨의 장모 모시기▼
―장모님 말씀에 무조건 맞장구친다(노인에게는 ‘들어주는 귀’가 필요하다)
―사소한 것에 신경 쓴다
(“장모님 닮아 아내가 피부가 고와요”)
―아내가 집안일 할 때 거드는 척이라도 한다(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기)
―가끔 애교를 부린다
(“아들 배고파 죽겠어요”)
―집안 대소사를 의논한다
(큰 도움이 안 되더라도 말씀드린다)
―노래방에 모시고 간다
―처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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