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5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10일 17시 35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어제 뒤쫓는 적을 향해 돌진하였다가 싸움수레[전거] 바퀴가 부서져 하마터면 사로잡힐 뻔하였습니다. 겨우 몸을 빼내 부근 농가에 숨어 있었는데, 마침 그 앞 관도를 지나는 수레 한 대가 있기에 그걸 뺏어 타고 패현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후영이 눈물을 씻고 전날 헤어진 뒤로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한왕이 조금 진정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패현으로 가려하였다?”

“그곳에는 태공 내외분과 대왕의 가솔들, 특히 영(盈) 공자가 계십니다. 대왕께 변고가 생기면 공자라도 모시고 서쪽으로 가서 태자로 세우고 뒷날을 기약하려 했습니다.”

“실은 과인도 그들을 데리러 패현으로 가는 길이었다. 허나 과인은 적제(赤帝)의 아들이니라. 어찌 감히 과인을 두고 변고를 말하느냐?”

한왕이 그새 되살아난 호기로 그렇게 말하고는 전날 저녁 무렵에 있었던 기이한 일을 한바탕 부풀려 떠들었다. 하지만 길에서 쓸데없이 머뭇거리다 몇 차례 낭패를 본 그들이었다. 거기서는 더 오래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길을 떠났다. 한왕은 타고 있던 말을 참마(참馬)로 붙이고 하후영이 모는 수레에 올랐다.

쫓기는 중에도 하후영을 만난 기쁨으로 기세가 약간 살아난 한왕 일행은 말을 채찍질해 패현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반나절을 달린 그들이 패현 경계로 막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상상조차 못한 일이 다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게 누구냐?”

지붕도 없는 수레에 앉아 있던 한왕이 길 한편을 가리키며 하후영에게 물었다. 큰 나무 아래 남매인 듯한 열 살 안팎의 소년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서로 부둥켜안고 서 있었다. 무심코 한왕이 가리킨 곳을 살피던 하후영이 놀라 고삐를 당기며 소리쳤다.

“영 공자와 맏공녀가 아닙니까?”

그래도 아비라고 한왕이 그 둘을 먼저 알아본 것이었다. 하후영이 급하게 수레를 세워 둘을 태웠다. 한왕이 둘에게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어찌하여 너희들이 여기에 있느냐?”

훌쩍이는 공자 유영(劉盈)을 대신해 세살 맏이인 공녀가 덜덜 떨며 말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왔어요.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를 잡아갔어요.”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너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풍읍 중양리(中陽里)에 있지 않았느냐?”

“아침에 심이기(審食其) 아저씨가 우리 모두를 수레에 태우고 중양리를 떠났어요. 군사들과 함께 우리를 에워싸고 오다가 저기 저 언덕 너머에서 초나라 군사들과 만났어요. 거기서 싸움이 벌어져… 우리 군사는 모두 죽고 달아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심이기 아저씨는 잡혀갔어요.”

말하다 보니 다시 끔찍한 그때 일이 떠오르는지 공주가 오들오들 떨었다. 공자 영은 거기서 아예 소리 내어 울었다. 한왕이 벌겋게 핏발 선 눈길로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이렇게 빠져 나올 수 있었느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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