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화가인 김영태 씨(70)가 작고한 후배인 여성화가 최욱경(1940∼1985)이 살아 있을 무렵 그녀에 대해 쓴 시 ‘화산 같은 여자’의 일부다.
자신의 재능을 불꽃처럼 소진하고 떠난 최욱경의 삶을 작가 엄광용 씨(51)가 글을, 김 씨가 삽화를 그려 한 권의 소설 ‘꿈의 벽 저쪽’(이가서)으로 펴냈다. 1990년 최욱경의 죽음을 소재로 ‘벽 속의 새’라는 작품을 썼던 엄 씨는 이를 15년 동안 매만지다가 이번에 제목을 바꿔 책으로 펴냈다.
“최욱경 1주기 때 기자였던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취재했지만 뭔가 막혀있는 기분이 들어 접어버렸다. 몇 년 뒤 이삿짐을 푸는데 봉투에서 난데없이 최욱경의 사진이 툭 떨어졌다. 나를 보면서 ‘이제 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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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로 일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 초대됐으며 미국 노르웨이 캐나다에서 잇따라 개인전을 열면서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적 화가로 손꼽혔다.
엄 씨는 “최욱경은 큰 사랑을 베풀어준 아버지가 배낭을 메고 나간 뒤 실종되자 미국에서 곧장 귀국해 섬으로, 산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며 “이후로는 화풍마저도 추상에서 자연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최욱경은 1985년 여름 자신의 화실 겸 아파트에서 취해서 잠든 듯이 눈을 감았다. 조사 결과,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숨진 지 5시간이 지났지만 음반이 돌아가고 있었고, 소설 ‘꿈의 벽 저쪽’에서는 이 음악이 구스타프 말러의 ‘부활’이었다고 쓰고 있다.
김 씨는 최욱경을 다룬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을 펴냈고, 최욱경의 친구였던 무용가 박명숙 씨(경희대 무용과 교수)와 함께 같은 제목의 무용극을 만들기도 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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