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잘 생기고 힘좋은 소나무 유전자를 지켜라

  • 입력 2005년 1월 13일 15시 50분


척박한 땅에서도 푸르고 곧게 뻗어 자라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사진은 고려시대 이후 왕조의 소나무 생산지였던 안면도 솔숲의 소나무.
척박한 땅에서도 푸르고 곧게 뻗어 자라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사진은 고려시대 이후 왕조의 소나무 생산지였던 안면도 솔숲의 소나무.
멕시코 소나무와 화성.

좀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화성의 지구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은 최근 멕시코 최고봉 ‘피코 데 오리사바’(해발 5647m)의 소나무를 화성에 옮겨 심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산소 부족과 강추위 속에서도 살아남는 소나무가 화성에서도 뿌리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땅에서도 소나무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기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수천 년 역사 동안 민족과 명운을 함께해 온 겨레의 나무이자 사시사철 푸른 산을 지키는 우리 숲의 주인이다.

10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무역선을, 고려시대 여진족을 막던 과선(戈船)을, 조선시대 거북선을 만드는 데 쓰였고, 바다를 건너 일본 국보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 미륵보살상의 재료가 된 나무다. 우리 건축물을 짓는 가장 훌륭한 목재이기도 하다.

산림종자연구소 안면지소 장경환 소장(오른쪽)이 이 연구소 조경진 시험과장과 함께 채종원의 소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전국의 우량 소나무만을 골라와 심은 이곳에서는 전국에 뿌릴 소나무 종자를 만든다. 한국 소나무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이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던 소나무가 요즘엔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이 됐다. 활엽수 세력에 숲에서 밀려나고 있는 데다 소나무 재선충병 등 각종 병충해로 죽어가고 있다. 향후 100년이면 소나무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 소나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 왕들이 아낀 안면도 美松

소나무를 찾아 안면도로 향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솔밭이다. 소나무는 이곳 산림의 62%를 차지한다. 소나무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지금은 사람을 위한 자연휴양림이 됐지만 고려 때부터 1000년이 넘게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목재를 공급해온 곳이다. 경복궁과 수원화성 등 주요 역사(役事)에는 반드시 이곳 소나무가 쓰였다.

조선왕조의 소나무에 대한 애착은 유별했다. 전국에 금산(禁山·소나무 벌목을 금지한 산)이나 봉산(封山·사용 목적을 지정해 보호한 산)을 둬 아무나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다.

안면도는 그중에서도 ‘특별관리대상’이었다. 질 좋은 소나무가 많고 바닷길이 있어 목재를 옮기기 쉬운, 소나무의 보고(寶庫)였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끼는 솔숲의 조림을 게을리 하면 곤장 80대를 맞았다. 소나무를 한 그루 베려면 행정기관에서 5단계의 결재과정을 거쳐야 했다.

자연휴양림에서 좀더 깊숙이 들어가면 한국 소나무의 미래가 움트는 곳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종자연구소 안면지소. 그 안에는 최고 품질 소나무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클론뱅크(clone bank)가 있다.

이곳에서는 전국 우량 소나무의 가지를 잘라 일반 소나무에 접붙이는 방법으로 복제 소나무를 만들어 보존한다. 주위 소나무보다 크고 두껍고 건강하며 종자도 많이 내는, ‘잘생겼고 튼튼하고 힘도 좋은’ 소나무 425그루의 가지를 5개씩, 모두 2125개의 복제 소나무가 5m 간격으로 산 두 개에 걸쳐 자라고 있다. 아직 키 30cm 정도밖에 안되지만 한국 소나무의 대를 이을 것이다.

○ 씨앗을 준비하는 마음

안면도는 바다로 둘러싸여 질 나쁜 외래 종자가 날아와 유전자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낮은 곳. 클론뱅크로는 제격인 장소다.

2003년 지금의 클론뱅크를 완성하기까지는 꼬박 44년이 걸렸다.

산림종자연구소 안면지소 장경환 소장(50)은 23년간 안면도에서 소나무와 함께 생활하며 클론뱅크를 일궈온 일등공신이다.

대부분 전국의 산림공무원이 우량 소나무를 발굴해 가지를 따 오지만 필요할 때에는 그가 직접 돌아다니며 챙기기도 했다.

“건설장비가 낙후됐던 1960, 70년대나,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숲 속에서는 산림공무원이 직접 20∼30m나 되는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따야 했죠. 특히 소나무는 눈이 트기 전인 1∼2월에 따야 하기 때문에 눈 속을 헤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멋진 소나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죠.”

나무 상태로 유전자를 보존하는 클론뱅크 인근에는 초우량 소나무의 씨앗을 얻는 채종원(seed orchard)이 있다. 4개의 산에 심어진 우량 소나무들을 교배해 씨앗을 만들어낸다.

국내산 소나무 종자는 모두 안면도산. 여기서 생산된 소나무 종자가 전국에 뿌려져 숲을 이뤄 나간다. 대규모 산불이 났던 강원 고성군에도 안면도 소나무 종자를 뿌렸다.

이들 씨앗이 쓰임새 있는 나무로 자라려면 100년은 기다려야 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당대에 성과를 누릴 수 없는 작업이죠. 다음 세대를 아끼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장 소장의 말이다.

○ 100년 뒤 미래를 위한 선물

대관령 자연휴양림은 80년 전 소나무 씨앗을 심어 이제야 결실을 거두고 있는 곳이다. 1922년경 직접 땅에 씨앗을 뿌려 조성한 국내 최대의 솔숲. 평균 수령 77년, 높이 17m, 가슴높이 직경 36cm인 ‘쭉쭉 빵빵’한 소나무들이 400ha에 걸쳐 있다. 앞으로 40년쯤 뒤면 경제적 가치가 1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금싸라기 숲이다. 이 중 284ha는 문화재 복원을 위한 목재로 지정해 집중 관리하고 있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 금강송의 자생 군락지로 유명한 경북 울진군에서는 지난해 11월 11일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다. 문화재청과 산림청이 소광리 일대에 금강송 2년생 1111그루를 심고 앞으로 150년 동안 벌목을 금지하는 ‘금강소나무 보호비 제막식’을 가진 것.

보호비에는 “이곳에 심은 금강소나무는 150년 뒤 후손들이 문화재 등 귀중한 목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심은 것”이라며 “이 소나무들이 재목으로 성장하기까지 정성과 염원을 담았다”고 적혀 있다.

어제 세대가 넘겨준 나무가, 오늘 세대의 손에 의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천년의 유산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 소나무가 처한 현실

과거 명성과 달리 소나무의 현실은 참담하다.

땅에 쌓인 솔잎과 잔가지를 거둬 연료로 쓰던 시절에는 솔방울이 땅에 싹을 틔우기 쉬웠지만 지금은 낙엽이 번식을 방해하고 있다. 또 낙엽이 쌓여 땅이 비옥해지면서 쑥쑥 크는 활엽수에 치여 소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최근 소나무 재선충의 공격은 한국 소나무의 ‘싹’을 말리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이 병에 한 번 걸리면 100% 말라 죽고, 전염성도 강하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재선충으로 인해 소나무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소나무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가 죽으면 숲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나무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실용적으로는 목재로서의 쓸모 때문이다. 너무 강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데다 송진의 ‘자연코팅’ 효과로 벌레나 습기에도 강해 건축재로 으뜸이다. 은은한 솔향은 덤이다.

소나무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목재의 57%를 차지한다. 최고의 목재로 치는 금강송의 경우 300년짜리 한 그루를 2300만 원에 팔았다는 일화도 있다. 목재 수입률이 90%가 넘는 현실만으로도 소나무를 지켜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고궁 고사찰 등 앞으로 수천 년을 이어가야 할 문화재 복원에는 소나무만을 쓴다. 소나무 없이는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1억 년 넘게 이 땅을 지켜 온 한국의 소나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보듬고 지켜 줄 때다.

안면도=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솔바람 솔솔… 아름다운 솔숲서 쌓인 피로 씻으세요▼

30m가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융단처럼 펼쳐지는 울진 소광리 솔숲. 이곳에서는 최근 문화재복원용 금강소나무를 심고 150년 뒤를 기약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오늘, 소나무와 놀아보지 않으실래요?”

긴장과 스트레스에 찌들어 일상의 짐이 버거운 당신에게 소나무는 좋은 친구가 돼 준다. 꽉 찬 머리를 솔바람 소리로 비워내고, 그 자리를 송진 냄새로 채워 보자.

1박2일로 다녀올 수 있는 솔 숲 세 곳을 소개한다. 이들 숲은 애호가들 사이에 ‘3대 아름다운 솔숲’으로 꼽히며, 산림청이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 대관령 자연휴양림 솔숲 (033-644-8327)

땅에 소나무씨를 뿌려 조성한 소나무 숲. 80년가량 된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옛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관령에서 강릉 방향으로 내려오면 첫 마을인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다. 영월의 청령포나 삼척의 준경릉 솔숲을 함께 찾으면 멋진 일정이 된다.

○ 울진 소광리 솔숲 (054-782-9007)

우리 소나무의 원형을 간직한 숲. 30m가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소광리의 장군터에서 발견된 황장봉표는 이 일대가 조선왕실의 목재 생산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인근의 영주 소수서원과 불영사의 솔숲에서 소나무와 유교 및 불교의 관련성을 헤아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안면도 자연휴양림 솔숲 (041-674-5019)

중부나 남부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곧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곳이다. 태안군 안면읍 승언3리에 있다.

인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산 추사 고택의 백송이나 서천 신송리의 곰솔을 함께 둘러보고 이 땅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종류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조경수에는 반송이 제격 묘목 잔뿌리 많아야 건강▼

종자를 뿌린 뒤 3개월 된 금강소나무의 싹.

‘스타 강사’ 정덕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52)의 취미는 소나무를 심는 것이다.

2000년 소나무 세 그루를 선물 받아 기르다가 소나무의 매력에 빠졌다. 4년 정도 전국 각지에서 알음알음으로 사다가 심은 것이 20여 그루나 된다.

여성들을 위한 쉼터 ‘빛과 향’ 건립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집필실이 있는 경기 안성시에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친 여성들의 휴식처가 될 이곳에 소나무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소나무에는 한 그루 한 그루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책 발간을 기념해 심은 나무, 아들이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심은 나무…. 자신은 100년도 살지 못하지만 나무는 그 이야기를 안고 수백 년을 살아갈 것이다.

요즘엔 정 교수처럼 소나무를 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은 뜰이 있다면 자녀세대, 손자세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심는 것도 좋을 듯.

주로 묘목을 심어 기르는데 초보자의 경우 높이 1.2∼2m 정도로 자란 묘목을 사는 게 좋고 묘목이 클수록 키우기가 쉽다. 가격은 1000원 안팎에서 10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묘목은 3년생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잔뿌리가 잘 발달해 있고, 잎의 색깔이 녹색으로 싱싱한 것이 건강하다. 가지치기를 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자 한다면 가지 배열이 촘촘한 것이 좋다.

장성한 소나무 가격은 부르는 게 값. 수령과 모양, 건강 상태에 따라 수십만 원대부터 수억 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모르면 바가지를 쓰거나 외래종을 재래종으로 속아 사는 경우도 있으므로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는 게 좋다.

큰 나무는 땅을 파서 옮기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최종 가격이 나무 가격의 10배에 달하므로 천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일부 고급주택가에서는 집값보다 더 비싼 수억 원대의 소나무를 기르기도 한다.

소나무는 심는 것보다 관리가 훨씬 어렵다. 나무의 모양을 다듬는 것을 전문 정원사에게 의뢰하는 것도 방법.

소나무를 심을 때는 뿌리를 너무 깊게 묻거나 발로 세게 밟으면 안 된다. 뿌리에 세균이 생기기 쉽다. 적당한 깊이에 묻은 뒤 물을 충분히 자주 준다. 소나무를 옮겨 심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외과수술에 해당하므로 약을 잘 쳐서 소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조경수로 가장 무난하고 인기 있는 것은 반송. 폭이 1m 정도 되는 것이 10만 원 안팎이다. 쟁반처럼 둥글게 퍼진 소나무다. 해송(곰솔)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것으로 강하고 모양을 만들기가 쉬운데다 줄기의 껍질이 검어서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다. 껍질이 흰 백송은 희귀해 비싸고, 주로 상류층의 수요가 많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이 기사 취재에는 대학생 인턴기자 김대승(성균관대 중문3) 김일주 씨(연세대 신문방송4)가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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