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들어설 때도 서로 문고리를 잡고 “추운데 먼저 들어가시라”고 사양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좋아하는 소나무를 이야기할 땐 목소리를 낮춰 “다른 소나무가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는데…”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지난해 초 만들어진 이 모임엔 직업은 달라도 소나무 하나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산천의 소나무를 화폭에 옮겨놓는 이영복, 이호신 화백, 소나무를 주제로 시를 쓰는 박희진 시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의 저자인 전영우 교수(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궁궐을 지을 소나무 목재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신응수 도편수(무형문화재 제74호), ‘소나무 애호가’인 엄호열 시사일본어사 사장이 그들.
소나무의 무엇이 이들을 사랑의 열병에 빠지게 했을까.
○ 소나무에 미친 사람들
이들의 소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엄 사장은 지난해 전남 영암에서 열린 이호신 화백의 전시회에 갔다가 그곳에서 “영성스럽고 잘생긴 소나무”를 발견하자 그만 나무를 껴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는 3년 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으로 이사하면서 옆에 소나무 4그루가 높게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터를 고른 ‘소나무 마니아’다.
이영복 화백은 경북 문경 존도리의 500년 된 소나무를 보러 갔다가 잎이 병들고 약해 보이자 안타까운 마음에 몰래 이장을 불러 돈봉투를 쥐어주며 “저 소나무에게 막걸리를 꼭 좀 대접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오래된 소나무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막걸리를 주는 것은 예부터 전해져 온 민간요법이다.
그런가 하면 전 교수는 4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한 뒤 1년간 학교를 쉬고 전국의 소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소나무의 치유력’을 통해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와 동행했던 이호신 화백은 소나무를 그리기 전엔 꼭 합장을 하고 소나무에 절을 한다.
이들 중 유일하게, 그 아끼는 소나무에 칼을 대어 베어내고 다듬는 신 도편수는 고건축물의 목재로 소나무만을 고집하며 소나무를 찾아 태백산맥을 누빈다.
장인으로서 소나무 예찬론자인 그는 “2000년부터 3년간 경복궁 근정전 복원 작업을 할 때 근정전을 해체해 보니까 전나무로 세운 기둥은 모두 부러졌는데 부러지지 않은 유일한 재목이 소나무였다”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수백 년을 살아 온 소나무에 다시 재목으로 수천 년을 살아갈 새로운 운명을 부여하는 일이지만, 아직도 소나무를 벨 때마다 “내 살을 베는 것 같은 심정”이 되어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소나무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이들은 약속하지 않아도 소나무를 통해 만남이 이어진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던 전 교수는 보은의 정부인송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이영복 화백, 시상을 다듬던 박 시인과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 왜, 소나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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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인은 소나무에 대한 1행시 54수를 모은 시집 ‘내 사랑 소나무’에서 ‘사람은 짐승 중의, 학은 새 중의, 소나무는 나무 중의 영물’이라고 썼다. 도대체 소나무가 어떻기에?
신 도편수에게 소나무는 고건축물을 짓는 목재로서의 ‘대상’을 뛰어넘어 ‘인생의 스승’이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한번 베이면 다시 나지 않으며, 변함없는 푸름을 유지하기 위해 묵은 잎이 떨어지기 전에 새 솔잎을 싹 틔운다. 그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지 않으려는 강직함, 내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성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소나무를 통해 배운다”고 했다.
엄 사장도 “소나무는 인간의 스승이라고 할 만큼 가치가 있다. 어떤 영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나무”라고 칭송했다.
또 화가들은 “다른 나무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조형적 아름다움”(이호신), “고고함과 수수함, 질박함의 조화”(이영복)를 소나무의 매력으로 꼽는다.
각자에게 최고로 치는 소나무를 물었다. 개성의 차이답게 갖가지 종류의 소나무 이름이 튀어나왔다.
“충주 단호사에 용틀임하듯 누운 소나무가 있는데 그만한 곡선의 미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죠.”(이영복)
“좋아하고 편한 것으로 따지면 인제 방태산의 소나무가 제일이고, 우러르는 것은 기품이 빼어난 영월의 관음송입니다.”(엄호열)
“하늘로 거침없이 쭉 뻗은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을 짝사랑하고 있어요.”(이호신)
전 교수는 한참 망설이더니 “하나만 꼽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국의 소나무 40그루를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두세 번씩 방문하며 사진을 촬영하고 글을 써 왔다.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더울 때와 추울 때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려고 그렇게 자주 들렀는데 “다른 소나무들에게 미안해서 하나만 좋다고 말 못한다”는 것.
솔바람 모임은 이달 중 구리 동구릉 방문을 시작으로 올해 6회가량 소나무 탐방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전 교수는 “소나무와 놀기도 참살이(웰빙)의 한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소나무는 빨리 자라지 않고 인내를 요구하는 나무입니다. 소나무와 놀면서 템포를 늦추고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변하지 않고 오래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는 거죠.”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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