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르네상스 발상지 伊 피렌체

  • 입력 2005년 1월 13일 15시 59분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폰테 베키오.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나오는 명소다. -사진 정태남씨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폰테 베키오.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나오는 명소다. -사진 정태남씨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서서 피렌체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시선은 시뇨리아 궁의 높은 탑과 대성당의 거대한 쿠폴라에서 멈췄다가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오래된 다리’라는 뜻) 아래로 흐르는 아르노 강으로 옮겨간다.

황혼 빛에 젖은 강물 따라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의 감미롭고도 애틋한 선율이 흐른다. 이 곡만큼 피렌체의 느낌을 정감 있게 전해 주는 음악이 있을까.

○ 베아트리체 그리며 불멸서사시 神曲 완성

이 곡의 가사에 나오는 폰테 베키오는 단테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어린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절명하고 말았지만.

폰테 베키오는 건축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단순히 강의 양안을 연결하는 것만 아니라, 양쪽 쇼핑거리를 잇는 금은보석 상가도 갖추고 있다. 지금 모습은 1565년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자리가 설계해 개축한 것이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본산 우피치 궁(Palazzo Uffizi)에서 강 건너 피티 궁(Palazzo Pitti)까지 직접 갈 수 있도록 기존의 동쪽 상가 위에 긴 실내 통로를 만들고 통로 양쪽 벽에는 미술품을 전시하도록 했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이곳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로 이름을 크게 떨친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 서 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피렌체’라는 이름은 기원전 1세기 로마군의 병영이 있던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꽃피는 곳’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피렌체는 12세기 초반 도시국가로서 세력을 크게 확장했지만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됐고, 주도권을 잡은 교황파는 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황제파였던 단테는 추방돼 오랜 유랑 생활 끝에 라벤나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쓴 서사시는 후세에 ‘신곡’이라고 불려지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라틴어 대신 피렌체 방언으로 쓴 덕분에 피렌체 말이 이탈리아 표준어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신곡’의 단테는 반대파의 정치가, 성직자, 또 악명높은 범죄자들을 지옥편에 넣었는데, 그중에는 남의 유산을 교묘하게 가로챈 희대의 사기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도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뒤에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단막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푸치니 작품 중에서 음악과 극이 가장 짜임새가 있고 뛰어나고, 오페라 중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우아한 선율로 유명하다.

○ 아르노 강 따라 화려한 문화의 꽃 만발

피렌체 대성당이 보이는 거리

그런데 종합예술 오페라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1500년대 후반 피렌체의 르네상스가 끝날 무렵 예술에 관심이 많은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카메라타’라고 하는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의 최대 관심사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다시 살려내는 것. 이들은 그리스 연극에 합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히 대사를 노래로 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음악극을 만들었다.

1600년 10월, 메디치 가문의 마리아와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결혼식 축하 공연 때 야코포 페리가 피티 궁 대극장에서 음악극 ‘에우리디체’를 선보였다. 그것이 오늘날 악보와 함께 전해지는 최초의 오페라다. 이 작품은 건축가들이 투시도 효과를 낸 무대로도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피렌체는 이처럼 오페라 발상지, 이탈리아 표준어 발상지, 르네상스 발상지 등 화려한 문화의 꽃이 만발했던 도시이다. 콧대 높은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탈리아 사람’이라기 보다는 ‘피렌체 사람’이라고 말한다. 문화적 자부심 때문일까, 오만 때문일까.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사기꾼 ‘잔니 스키키’ 이야기 푸치니 오페라 속으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세워진 단테의 석상. 그는 평생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그리워 하다가 죽기 전 방대한 서사시 '신곡'을 썼다.

‘잔니 스키키’는 푸치니가 만든 유일한 희극 오페라다. 배경은 1299년 피렌체. 그러니까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나오는 폰테 베키오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이 오페라는 성격이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출가의 뛰어난 감각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부호 도나티가 숨을 거두자 유산을 노리는 친척들이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시늉을 하는데, 도나티가 전 재산을 교회에 기증한다는 유서가 발견되자 모두 실망한다.

그들 중에는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의 애인도 있다. 그는 잔니 스키키에게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한다. 상황을 살펴본 잔니 스키키는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딸 라우레타가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게 되면 폰테 베키오에서 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내용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애절하게 노래하자 섬뜩해진 아버지는 딸을 위해 기가 막힌 사기극을 꾸민다. 그는 친척들에게 도나티가 죽은 것을 아무도 모르니 가짜 도나티로 하여금 공증인 앞에서 유언장을 새로 쓰게 하자고 한다. 단 발각되면 공모자들도 모두 손이 잘리고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게 된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가짜 도나티가 된 잔니 스키키는 병석에 누워 공증인을 불러놓고, “값나가는 재산은 모두 나의 사랑하는 친구 잔니 스키키에게 준다”라고 유언한다. 유산을 기대하던 도나티의 친척들은 눈 뜨고 코 베이는 꼴이 됐지만 유언장 위조 공모자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손이 잘려 추방당할 판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유산을 모두 가로챈 잔니 스키키한테서 결국 쫓겨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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