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스님의 유언에 따라 산에서 내려와 서울로 올라온 세 스님.
산에서만 살던 스님들에게 서울은 무뚝뚝하고 현기증 나는 도시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안전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라는 안내방송을 따르는 것은 스님들뿐이고, 홍보 도우미들은 민망한 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화려한 춤을 춘다. 사람들은 눈앞의 사람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휴대전화로 보이지 않는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교통카드로 형태 없는 돈을 낸다.
스님과 조직폭력배들의 대결이라는 전편(‘달마야 놀자’·2001년)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스케일을 키우는 ‘속편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2004년).
영화 속 현각 스님(이원종)의 표현을 빌리면 ‘울어도 서서 울어야 하는 살벌한 곳’이라서 ‘서울’이란 이름이 붙은 거대 도시의 지하철, 버스, 모텔, 길거리와 노래방에서 서울올림픽 이후 TV조차 한번 본 적이 없다는 스님들은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이 묵언수행 중인 대봉 스님(이문식)의 탁발 소동이다. 절을 살리겠다고 탁발에 나선 대봉 스님은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경기장역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좋았지만 처음 시주함을 놓았던 곳에서는 험상궂게 생긴 다른 스님에게 자리를 뺏기고, 그 다음에 자리 잡은 곳은 엉뚱하게도 구세군 자선냄비 옆이다. 크리스마스트리 옆, ‘달마도 공짜’라고 써 붙인 종이 아래서 행인을 붙잡는 대봉 스님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사실 지하철 월드컵경기장역은 각종 TV 드라마나 CF에도 자주 나오는 명소다. 지면보다 높이가 낮은 출구를 나서면 역을 중심으로 반원 형태의 넓은 계단과 긴 에스컬레이터가 밖으로 이어진다.
출구 근처를 무대로, 계단을 객석으로 하면 그대로 노천극장이 된다. 물이 폭포를 이루며 내려오도록 한 조경시설과 화려한 야간 조명으로 여름밤에 특히 멋있다. 실제로 도시철도공사가 주최하는 각종 문화 공연도 자주 열린다.
여기서 서울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월드컵공원이 나온다. 그 안에 있는 평화의공원과 하늘공원은 데이트나 소풍 장소로 그만. 난지천공원 임시주차장에는 얼음썰매장이 조성돼 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며 무료로 썰매를 빌려준다. 02-300-5545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문화 공간 설치된 역들▼
서울에는 월드컵경기장역 외에도 각종 문화공간이 설치된 지하철역들이 많다.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에는 극장 비디오방 편집실 도서관이 갖춰진 영상센터 ‘오! 재미동’이 있다. 6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예술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며, 영상 편집장비를 갖춘 편집실에서는 영상 관련 기초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비디오방 관람료는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되며 영화와 사진 관련 서적 400여 권을 갖춘 도서관 이용은 공짜다.
3호선 경복궁역 지하 1층에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834평 규모의 미술전시관이 있다. 연중무휴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4호선 혜화역 지하 1층 대합실에도 50여 점의 패널을 전시할 수 있는 혜화미술전시관이 있다.
이들 전시공간은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가 전기료와 청소비 등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빌려주기 때문에 대관료가 저렴하다. 경복궁역 전시관은 하루 약 6만 원, 혜화역 전시관은 하루 4만2000원 정도.
유리지붕과 현대적인 감각의 내부 설계가 유명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은 결혼예식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임대 무료.
5호선 광화문역에는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166평 규모의 전문 전시관이,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는 128평 규모의 체험학습관이 있다.
2·4호선 사당역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이 열린다. 공연 일정은 공사 홈페이지(www.subwayworld.co.kr)에서 볼 수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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