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병을 아시나요?

  • 입력 2005년 1월 16일 18시 43분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저자 김영진 교수는 14일 “정년퇴직을 앞둔 철학교수로서 평생의 화두를 풀어낸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권주훈 기자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저자 김영진 교수는 14일 “정년퇴직을 앞둔 철학교수로서 평생의 화두를 풀어낸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권주훈 기자
“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서울 여의도와 종로의 수많은 집회 현장을 직접 찾아갔고 수많은 TV토론을 지켜봤습니다. 관찰 결과, 한국인들은 중증의 철학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 저서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철학과 현실사)을 펴낸 김영진 인하대 교수(65)는 한국사회가 윤리적 착각과 논리적 오류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돼 있다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육체적 질병과 정신질환 외에 세 번째 질환으로 ‘철학적 병’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적 병은 크게 윤리적 질환과 논리적 질환, 그리고 인식론적 질환으로 분류된다.

“한국인의 가장 심각한 질환은 도덕과 예절을 구분하지 못하는 윤리적 질환입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인들이 서구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지요. 부모나 스승의 잘못을 따지지 못하는 것은 예절일 뿐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도덕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있는 정직과 공정성, 형평성 등을 말합니다.”

한국인들이 논쟁만 붙으면 “나이가 몇이냐”, “윗사람에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도덕과 예절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런 식의 말싸움은 논리학적으로도 논점 변경의 오류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보수는 낡고 부패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자칭 진보주의자의 사고방식이나 진보는 좌익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자칭 보수주의자의 판단도 가치관을 왜곡하는 질병이란 설명이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자유와 평등을 추구합니다. 다만 보수가 자유를, 진보가 평등을 좀더 강조할 뿐이지요. 보수적이라는 분들이 군부독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또 진보주의자들이 남한의 독재를 비판하면서 정작 북한의 독재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칸트가 말한 윤리적 보편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지요.”

TV토론이나 집회에서는 논리적 오류가 무수하게 드러난다. 상대방이 하지 않은 말을 마치 그가 한 것처럼 뒤집어씌워서 비판하는 ‘허수아비 논법’, 논쟁의 본류에서 벗어나 엉뚱한 일에 시비를 거는 ‘논점 변경’, 논리 전개의 전제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넘어가는 ‘거지논법(순환논리)’ 등이 특히 심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논리적 훈련이 안돼 있어 지식인조차 일반과 보편, 모순과 반대, 애매와 모호라는 개념도 구별할 줄 모른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모든 낙태를 허용해선 안 된다’에 대한 논리적 반대(contrariety)는 ‘모든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이다. ‘어떤 낙태는 허용할 수 있다’는 반대가 아니라 모순(contradiction)이다. 이는 모순과 반대의 개념을 포괄하는 대립(opposition)과 반대를 착각해서 생기는 것이다. 영미 언론에서는 이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반면 한국 언론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런 철학적 질환을 고치기 위한 ‘임상 철학’ 또는 ‘철학 클리닉’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논리를 중시하는 법정 공방에서조차 논리적 오류가 넘쳐납니다. 한국인들의 토론문화가 비생산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서로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조차 모르고 떠들고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철학, 특히 논리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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