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럭셔리 주유소 1호 서울 신사동 ‘카젠’

  • 입력 2005년 1월 20일 15시 48분


툭하면 올라가는 기름값. 인상소식이 전해지면 그 전날 밤 주유소 앞은 단 몇 푼이라도 아끼려는 운전자들로 밤새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1L에 2000원인 고급 휘발유만 파는 주유소가 있단다. 보통 휘발유도 경유도, 액화석유가스(LPG)도 안 파는 곳. 보통 주유소보다 600∼700원이나 비싼데도 손님은 꾸준히 늘고 있다.

기름에 금을 발랐나?

대한민국 럭셔리 주유소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살짝 엿보기. 그리고 기름값에 관한 이야기.

○ 직원들 모두 서비스경력 지녀

차를 몰고 들어가면 번쩍번쩍 우주선 내부 같은 외관. 바닥은 활주로처럼 차를 인도하는 유도등이 깔려있고 특급 호텔 도어맨 같은 차림의 직원들이 비행기를 인도하듯 수신호로 방향을 지시한다.

휘발유를 넣는 동안 운전자는 2층 라운지로 향한다. 호텔 커피숍 같은 분위기다. 여직원이 원하는 음료수를 주문받는다. 물론 무료다. 바로 옆에 있는 퍼팅기에서 간단한 골프 연습을 한다. 주유나 세차가 끝나도 여유 있게 머무를 수 있다. 옆 테이블에서는 무슨 동호회 회원들인 듯한 사람들이 차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현대 오일뱅크가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카젠’ 주유소.

여기서 파는 것은 옥탄가 98 이상의 고급 휘발유.

물론 옥탄가 98 이상의 고급 휘발유를 파는 곳은 다른 곳에도 있다. 현대 오일뱅크 이외에도 각 정유사가 공급하는데 일부 주유소에서 주유기 하나 정도는 고급휘발유를 취급한다. 가격은 카젠보다 400원가량 싼 1600원대. 보통휘발유, 경유 등과 함께 팔다보니 매출액은 미미한 수준.

그렇다면 똑같은 고급휘발유가 카젠에서는 더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400원이지, 한 번에 50L를 넣을 경우 보통 휘발유보다는 최고 3만 원, 똑같은 고급 휘발유보다는 2만 원을 더 내는 셈이다.

“그야 저희 주유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값이죠. 쾌적한 분위기에서 질 좋은 휘발유를 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주유소 강태안 사장(38·여)의 말이다. 유독 ‘서비스’를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이 주유소 직원 25명은 대부분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경력을 쌓은 ‘서비스맨’들. 강 사장 역시 스위스 호텔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외 유수의 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호텔통’이다.

○ 고급휘발유 고객들

그렇다면 어떤 고객이, 왜 이곳을 찾는가.

“소득이 높은 고객들이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잘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동차 애호가들이 더 많죠. 자기는 굶어도 차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분들요.”

기자는 이 주유소에서 이틀 동안 벤츠, 재규어, BMW 등 이름을 아는 외제차부터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것 까지 다양한 차종을 만날 수 있었다. 차들이 몰리는 퇴근 시간 무렵에는 ‘고급차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다고 ‘졸부’만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손님 중에는 의외로 티코 운전자도, 퀵 서비스 오토바이 운전자도 있다.

“얼마 전 퀵 서비스 아저씨가 기름을 넣으러 오셨어요. 잘못 오신 줄 알고 ‘여기는 2000원 짜리 고급 휘발유만 파는 곳’이라고 알려드렸죠. 힐끔 쳐다본 아저씨가 ‘그래요? 한 번 넣어봐요’ 하시더니 그 후 2, 3일 간격으로 계속 오시더라고요. 달리는 맛이 다르다나요.”

고객군이 아무래도 특정 계층에 집중되다보니 그들만의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창문을 잘 열지 않는 것이 그것. 기름을 넣어달라고 말할 때도, 카드 결제를 할 때도 아주 조금만 창문을 연다고 한다.

“이유야 잘 모르죠.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싫은지도 모르고. 근데 아무리 봐도 연예인은 아닌 것 같은데…. 하하하.”

또 돈이 많아도 차가 워낙 고급이다 보니 손님 중에는 ‘누가 내차를 긁고 가면 어떻게 하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 비싼 기름 & 싼 기름

이곳 건물 내 사무실은 상당히 춥다. 화재 위험 때문에 난방을 할 수 없기 때문. 온풍기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할 때가 아니면 잘 가동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고급 휘발유 이외에는 팔지 않아요. 온풍기에 넣을 등유를 구하려면 인근 다른 일반 주유소까지 가서 사와야 하니까 좀 추워도 참아야죠.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니… 좀 아이러니하죠.”

참고로 말하면 석유사업법상 휘발유는 보통과 고급 두 종류로 나뉜다. 양자의 차이는 옥탄가와 색상. 보통 휘발유는 옥탄가 91∼93으로 노란색을 띠는 반면 고급 휘발유는 옥탄가 98 이상으로 녹색을 띤다.

휘발유는 옥탄가가 높을수록 시동을 걸 때 쿨렁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출발하며 엔진을 보호해 준다. 분초를 다투는 경주용 차량 등이 고옥탄가 고급휘발유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일반 차량의 경우에는 보통 휘발유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말. 미국에서는 보통 휘발유의 옥탄가가 88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보통 휘발유의 옥탄가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인 셈이다.

또 광고를 보면 정유사별로 휘발유 품질에 차이가 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첨가제의 차이에 불과하다.

정유공장이 SK가 울산, LG가 여수, 현대가 충남 대산, 쌍용이 경남 온산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쌍용을 제외하면 각 사가 그 지역 저유소에서 휘발유를 공급받아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다. 휘발유 수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저유소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휘발유를 나누어 받으면서 출고 직전 각사가 지정한 첨가제를 추가하는 방식.

예를 들면 울산에서는 각 사가 SK 기름을, 충남에서는 현대 기름을 이용하는 식이다. 물론 서울의 경우에는 각사가 자체 저유소를 확보하고 있기는 하다.

휘발유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주유소의 경쟁 요인이 훨씬 크다. 대부분 정유사는 L당 1300원 안팎에서 공급을 하지만 여기에 개별 주유소가 마진을 얼마나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서울보다는 지방이 싸고 서울에서도 시내나 강남 등지에서는 임대료, 부대시설, 서비스 차이 등 때문에 비교적 비싸다.

서울시내 구별 가장 싼 주유소
장소주유소L당 가격
강동구 천호동천동(현대)1314원
송파구 삼전동한빛(S-oil)1322원
강남구 대치동대치동 (현대)1326원
서초구 양재동제원(LG)1337원
관악구 신림 11동진영(현대)1340원
동작구 대방동한마음(S-oil)1357원
금천구 독산동남서울(현대)1319원
영등포구 도림동강서(S-oil)1317원
구로구 개봉동황룡(현대)1316원
양천구 신월3동한도(SK)1307원
강서구 외발산동김포공항(SK)1351원
마포구 성산동성산(SK)1340원
서대문구 북가좌동유풍(LG)1278원
은평구 증산동타이거(현대)1279원
종로구 평창동평창(현대)1339원
용산구 동자동동자동(SK)1362원
중구 무학동*화성1340원
성북구 안암동5가신방(S-oil)1257원
동대문구 휘경동*대진1289원
성동구 용답동명성(LG)1318원
강북구 번동꿈동산(현대)1279원
도봉구 쌍문 2동우이동(LG)1287원
노원구 월계동월계(LG)1279원
중랑구 중곡동중곡현대(현대)1279원
광진구 광장동*삼호1269원
*표시 주유소는 복수폴 주유소. 조사기간 6~14일, 일반 휘발유 기준.
자료:www.oilpricewatch.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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