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실현 vs 희망달리기
촬영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공공의 적 2’(27일 개봉)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영화사에 ‘관객 1000만’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강우석 감독이 ‘실미도’ 이후 처음 내놓는 작품이자 영화 제목이 사회적 용어가 돼 버린 ‘공공의 적’(2002년)의 속편이다. 앞선 작품들이 드리운 영광이 너무 눈부셔서 관객들의 기대수준이 그만큼 높아져 버린 게 오히려 부담. 강 감독은 1편이 잡범 수준의 ‘그냥 나쁜 놈’을 다룬 것이라면 2편에 등장하는 악한이야말로 한국사회라는 시스템의 존속을 위협하는 진짜 ‘공공의 적’이라고 구분한다. 살인, 살인교사, 횡령, 외화밀반출, 뇌물공여, 부정한 병역면제…. 겉으로는 사회지도층 인사지만 속으로는 여러 사람 분의 죄를 짓고도 한 치 거리낌 없는 초강력 공공의 적 한상우(정준호)와 대한민국의 정의실현을 양 어깨에 걸머진 슈퍼히어로 강철중 검사(설경구)의 화끈한 맞대결이다.
같은 날 개봉을 택해 정면대결에 나선 ‘말아톤’은 응징이 주는 카타르시스 대신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누선을 자극한다. 자기 안에 갇혀 사는 스무 살 자폐 청년 윤초원(조승우)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최근 몇 년 새 각광받는 대중스포츠가 된 마라톤, 불굴의 모성과 가족 갈등의 치유, 역경 극복이라는 순도 높은 감동 코드에다 뮤지컬계의 흥행 메이커 조승우가 결합한 것이 ‘말아톤’의 강점. 높은 톤의 목소리로 천연덕스레 자폐 청년을 연기하는 조승우가 끌어내는 웃음과 눈물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소리 소문 없이 제작 완료된 뒤 불쑥 나타난 ‘그때 그 사람들’(2월 3일 개봉)은 영화 이전에 사회적 이슈가 돼 버렸다. 한국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날인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현재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된 상태. 뚜껑이 열려 영화의 본 모습을 보인 후에도 ‘사실의 재현이냐 풍자냐’라는 논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B형 남자친구’(2월3일 개봉)는 SBS ‘파리의 연인’으로 일약 한국여성의 ‘꿈에 그리던 왕자님’으로 등극한 이동건과 지난해 KBS드라마 ‘낭랑 18세’에서 그와 호흡을 맞췄던 한지혜가 주인공. 혈액형 성격 테스트, B형 남자에 대한 선입견 등 트렌디한 소재를 청춘스타에 실었다. 이동건이 찜질방에서 먹고 자면서도 차만큼은 스포츠카를 타야 하는 폼생폼사의 청년 사업가 영빈을 연기한다. 설 개봉 한국영화 중 10대 관객까지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이 강점.
○ 키아누 리브스 vs 주드 로
‘매트릭스’의 구원자 네오가 이번에는 영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며 선과 악의 균형 맞추기에 동분서주하는 퇴마사 존 콘스탄틴이 됐다. 2월8일 개봉하는 ‘콘스탄틴’은 제작국인 미국도 제치고 한국이 전 세계 첫 개봉국이다. 인간의 형상을 한 혼혈천사와 혼혈악마를 가려 볼 수 있는 천부적 능력을 지닌 콘스탄틴은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자살을 택하지만 다시 살아난 뒤 자신에게 예정된 지옥행을 면하기 위해 악마들을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나선다.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갱스터 영화 같은 액션에 담아냈다.
첫눈에 반한 운명적 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일까? 운명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운명은 우연일까? 아니면 기획되는 것일까?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나탈리 포트먼, 클라이브 오웬이 출연한 ‘클로저’(2월 3일 개봉)는 이미 포트먼과 오웬의 2005년 골든 글로브 조연상 수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받은 상태. 신문의 부고 담당 기자인 런던 청년 로는 출근길에 만난 미국 출신의 스트립 댄서 포트먼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앞다투어 개봉됐던 애니메이션들이 썰물처럼 지나간 자리, 드림웍스가 내놓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27일 개봉)이 가족용 판타지 모험드라마로 등장한다.
데니스 퀘이드가 주연을 맡은 ‘피닉스’(2월 4일 개봉)는 죽음의 위기에서 불사조처럼 날아오를 비행기의 이름. 고비 사막 한가운데 비행기가 추락하고 승객 10명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자신이 비행기 설계자라고 주장하는 생존자 엘리엇은 비행기의 잔해를 모아 새 비행기를 만들자고 제안하는데….
북적거리는 설 대목 극장가를 피해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예술영화 취향의 관객에게도 도피처는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비롯해 8인의 거장 감독들이 단 10분씩만을 사용해 인생의 다면적 모습을 스케치해낸 ‘텐 미니츠 첼로’(27일 개봉)가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 한 곳에서 상영된다. 오랜만에 뉴요커 우디 앨런의 수다도 들을 수 있다. 2003년작인 ‘애니씽엘스’(2월 4일 개봉)에서 앨런은 친구의 애인과 덜컥 사랑에 빠져 우정도 저버리고 멀쩡한 애인도 차버린 철없는 어린 친구의 연애상담으로 분주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번쩍이는 현명함은 우물우물한 수다에 묻히기 십상이라 귀를 한껏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