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66>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24일 18시 0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하지만 형양까지는 여기서 천리 길이요. 당장 등 뒤로 항왕의 대군이 다가오고 앞길에는 곳곳에 반적들이 버티고 있는데, 무슨 수로 이 상하고 지친 군사를 이끌고 천리 길을 헤쳐가 형양까지 간단 말이오?”

한왕이 멀리 있는 대장군 한신을 나무라듯 장량에게 그렇게 반문했다. 그러자 종공(종公)이 다시 나서 한신의 뜻을 전했다.

“대장군께서 이르시기를, 왕무나 정거의 무리는 크게 걱정할만한 세력이 못된다고 하셨습니다. 항복한 초나라 장수들이 대왕께서 팽성에서 크게 낭패를 당하셨다는 소문에 놀란 한나라 군사들을 일시 내쫓고 외황이나 옹구에 들어앉은 것이니, 용맹한 장수에 군사 한 갈래만 딸려 보내도 쉽게 흩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오는 길에 들은 대로 조참 장군과 관영 장군이 가기 1만 군사를 이끌고 갔다면 그곳 일은 반드시 대장군의 헤아림대로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뒤를 막게 하시고, 지름길로 홍구(鴻溝)를 건너 형양으로 드시도록 하십시오.”

져서 쫓기면서도 싸움의 큰 형세를 훤히 꿰고 있는 듯한 한신의 말이었다. 이에 한왕도 조금 마음이 풀렸다.

“여기서 형양으로 가는 지름길이 어찌 따로 있겠느냐? 외황과 옹구를 지나는 길이 곧 지름길인 것을.”

그렇게 빈정거리기는 했으나 더는 한신을 나무라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 뒷일은 한신의 헤아림대로 되었다. 한왕이 남은 군사를 이끌고 하룻길을 더 달려 외황에 이르니, 조참은 벌서 왕무를 쳐부수고 북쪽으로 정거를 쫓고 있었다.

“조참 장군은 정거를 이긴 뒤에도 홍구 동쪽에 남아 반적들을 소탕하라. 그러다가 항왕의 대군이 이르거든 형양으로 와서 과인의 본진(本陣)에 들도록 하라.”

한왕은 대장군 한신의 말에 따라 그런 전갈을 조참에게 보낸 뒤에 외황에서 하루밤을 쉬었다. 이튿날 다시 서쪽으로 길을 재촉하여 저물녘에 옹구에 이르니 그곳도 사정은 외황과 비슷했다. 관영은 위공(魏公) 신도를 한 싸움으로 이긴 뒤에 달아난 그를 따라 하황(下黃) 쪽으로 가고 없었다. 한왕은 관영에게도 조참에게와 비슷한 명을 내렸다.

“관영 장군은 신도를 사로잡은 뒤에도 옹구에 머물러 반적들이 더는 일지 못하게 하라. 하왕의 대군이 홍구를 넘어서기 전에는 형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옹구에서 하룻밤을 쉬는 둥 마는 둥 서쪽으로 재촉했다. 우현(虞縣)에서 다시 내리 사흘을 내달려와서 그런지 다음날 한왕이 진류(陳留)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날이 어두워 오고 있었다.

“인마가 아울러 지쳐 하루 백리 길을 가지 못하는구나. 어쩔 수 없다. 진류에서 하루 밤을 더 쉬고 내일 새벽 일찍 길을 떠나도록 하자. 내일은 백오십 리를 달려 어둡기 전에 곡우(曲遇)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한왕이 그렇게 말하며 진류에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날 한왕은 새벽같이 군사들을 재촉 길을 떠났다. 그런데 정오 무렵 대량(大梁) 북쪽을 지날 무렵이었다. 갑자기 남쪽에서 부옇게 먼지가 일며 한 떼의 인마가 달려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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