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역사를 지우거나 희롱해선 안 된다

  • 입력 2005년 1월 25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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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표현의 자유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유족들은 이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戱畵化)하고 있다. 여성편력이 있고 일본말을 자주 쓰며 엔카(일본 가요)를 좋아하는 지도자로 그리고 있다. 제작사 측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설명하나 영상매체의 위력을 생각하면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영화 속의 박정희’가 실제의 인물로 각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우리 현대사에 남긴 족적에는 영욕(榮辱)이 교차한다. 산업화를 이뤄냈지만 권위주의적 통치와 인권탄압으로 ‘독재자’란 오명(汚名)도 따라다닌다. 그가 외쳤던 ‘근대화’의 구호는 오늘날 ‘선진한국’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통치행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민주와 반(反)민주를 가르는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런 그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아무리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린다고 해도 좀 더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한글 친필로 된 광화문 현판 교체도 그렇다. 현판을 바꿔서 광화문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한층 살아날 수 있다면 말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땅한 글씨가 없어서 정조(正祖)의 글씨를 집자(集字)해야 할 정도라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2009년에 끝나는 경복궁 복원사업에 맞춰 공론화 과정을 거쳐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출범 후 친일진상규명법 제정,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의도적인 ‘박정희 때리기’로 보는 시각마저 있다.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역사는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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