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성환]‘박정희 시대’를 제물로 삼을건가

  • 입력 2005년 1월 27일 19시 06분


저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인간 박정희의 비극을 끌어와 그 시대를 부정하고 능욕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일부 정파와 권력은 이를 방조하는 형국이다.

인간적 비극의 극점을 이루었다고 문세광 사건, 10·26사건을 어둠의 기억으로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외교 사료의 공개와 함께, 영화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그 사건들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다. 문제는 보도를 넘어 정치적인 윤색이 드러나고 예술을 빙자해 상업주의로 경험 없는 세대에 집단적 편견을 강제할 경우 이는 역사의 재정립이 아니라 역사의 폄훼(貶毁)가 된다는 점이다.

그를 옹호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사가 ‘박정희’로 환치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박정희’ 논란은 역사에 대한 공정한 재평가가 아니라 오늘의 저열한 싸움의 소재일 뿐이다. 박정희를 능욕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고, 박정희의 신화에 안주하고픈 자들의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에서는 모두가 패배자로 기록될 것이다.

▼정쟁에 왜곡되는 과거사▼

2020년을 목표로 현재를 추슬러야 할 우리라면 1970년대의 시대논리에 함몰되어선 곤란하다. 박정희는 맹목적 추종과 일방적 훼절(毁折)의 대상이 아니다.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는 계승과 지양(止揚)의 변증법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자(死者)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박정희 극복’의 방안이다.

이를 위해 첫째, 현재의 필요와 미래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편의주의적 역사의식을 불식해야 한다. 영욕이 함께 묻어 있는 역사를 두고 정파의 이해득실로, 지식인의 독선으로, 예술가의 방종으로 훼절과 침소봉대를 일삼는다면 이는 역사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오히려 청산돼야 할 것은 수치스러운 과거 그 자체라기보다 역사를 두고 장난을 벌이는 우리의 왜곡된 의식이다.

둘째, 건국-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의 전체 구조 속에서 박정희 시대가 평가돼야 한다. 각 시대에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성공과 실패가 평가된다. 한국 현대사는 시대사적 문제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결해 왔다. 한국은 베트남, 필리핀, 아르헨티나와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과 비교되는 나라다. 물론 그 발전이 ‘압축적’이었던 만큼 주름과 상처도 깊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의 주름과 상처를 자학하는 데에 박정희를 제물로 바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주도했고 절대 다수의 국민이 노고를 바친 산업화와 경제발전은 의식이나 이념으로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독재는 민주화 열망을 탄압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열망과 실천을 더욱 강건하게 한 필요악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신화도 아니요, 악령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시대를 비추는 중요한 거울 중의 하나다.

▼계승과 지양의 역사로▼

셋째, 박정희 시대는 전복과 복수라는 파괴적 역사의식이 아니라 계승과 지양의 변증법적 역사의식 속에서 국가선진화, 민족통일이라는 새로운 시대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공정하게 재평가하되 그 속에 포함된 자랑과 수치를 197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적 미래 형성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하는 집단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최근 ‘박정희 때리기’에 골몰하는 이들과 이를 방조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박정희에게 제대로 복수하기 위해서는 박정희를 넘어서는 성취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도 그 고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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