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족이다]<3>부부 복지사 ‘보육원 가정’

  • 입력 2005년 1월 30일 18시 51분


소원형 방주혜 씨 부부가 ‘새소망 소년의집’ 초등생 남자아이들을 끌고 뒷집 ‘소녀의 집’을 찾아 그곳 거실에서 여중생 누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타를 잡은 소 씨의 장인 방영길 씨는 ‘오빠생각’을 부르자는데 딸 주혜 씨와 아이들이 “썰렁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부천=김미옥 기자
소원형 방주혜 씨 부부가 ‘새소망 소년의집’ 초등생 남자아이들을 끌고 뒷집 ‘소녀의 집’을 찾아 그곳 거실에서 여중생 누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타를 잡은 소 씨의 장인 방영길 씨는 ‘오빠생각’을 부르자는데 딸 주혜 씨와 아이들이 “썰렁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부천=김미옥 기자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새소망 소년의집’에 사는 소원형(29) 방주혜 씨(29) 부부는 열흘 남짓 남은 설날을 앞두고 마음이 바쁘다. 뒷집 ‘소녀의집’에 사는 방씨의 부모도 챙겨야 하고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11명의 아이들 세뱃돈도 빳빳한 1000원짜리로 준비해야 한다. 참, 소 씨 부부의 아들이자 형들의 막내뻘인 10개월짜리 중한이를 빼먹었다! 얼굴에 혈근종을 앓는 민규(13)의 네 번째 수술도 지난 주말 마쳤다. 민규가 힘이 세 아이들이 놀리지는 못하지만 사진 찍을 때마다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소 씨는 “민규는 대여섯 살 때 여기에 왔다”며 “열 번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을 잘 참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형이자 아버지 역할을 하는 소 씨가 여기에 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의 보육시설인 자애원을 도망쳐 철길을 따라 걸어서 서울로 왔다. ‘나쁜 짓’을 하다 일시보호소에 들어가기도 했고 이곳에 들어와서도 오락에 빠져 밤늦게 귀가하다 야단을 맞고 다시 도망치기도 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대학원까지 다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성실함 때문이다. 보조교사 월급으로는 학비가 모자라 방학 때는 공사장 막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희가 아무리 잘해 주어도 아이들은 항상 정에 굶주려 있습니다. 일반가정에서도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있지 않습니까. 형이나 누나들이 찾아와 놀아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소 씨의 장인 방영길 씨(56)는 “내가 어려서 이곳에서 살 때는 맘껏 먹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며 “요즘 아이들의 꿈은 다양해졌지만 가정 해체로 가슴에 남은 상처는 훨씬 큰 것 같다”고 거든다.

전쟁고아인 방 씨는 만 18세 때 이곳을 떠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다 30여 년 만인 5년 전 원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유치원 교사였던 딸 주혜 씨는 서울로 출퇴근하느라 일요일에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는 소 씨를 얼핏 보았을 뿐이다.

소 씨를 사위로 맞자고 나선 것은 방 씨의 부인 이경숙 씨(48). 대학 동창으로부터 중매가 들어왔으나 소 씨의 성실성을 눈여겨 본 이 씨는 남편을 졸랐다.

방 씨는 “나도 고아인데 고아사위를 맞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주위에서도 말렸다”며 “그러나 내가 고아를 배척하면 누가 따뜻하게 맞아줄 것인가 고민 끝에 허락했다”고 털어놓았다.

소 씨와 주혜 씨는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3년 전 이 집 솔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소 씨는 아이들에게 정직을 강조한다. 자신도 어려서 거짓말을 많이 했지만 정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으면 혼나지 않고 용서받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것은 주혜 씨의 역할이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앉아 뒤치다꺼리하고 공부까지 봐 준다. 중한이 보러 방에 들어갔다가도 아이들이 TV라도 틀면 어느새 거실로 나와 공부하라고 채근한다.

주혜 씨는 “대학을 마쳤지만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며 “이곳 아이들은 마음의 치료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뒷집 ‘소녀의집’에서 여중생 10여 명과 함께 생활하는 방 씨 부부는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다. 주혜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친정을 드나든다.

다시 설날 얘기가 나왔다. 진한이(10)가 할머니가 설에 오셔서 큰아빠네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고 말하자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영준이(13)가 설에 자신도 아빠가 오셔서 데려가지만 아빠 집에서는 심심하다고 말하자 일제히 입으로는 “여기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고 외치면서도 부러운 눈치다.

“그래도 아이들은 설을 기다립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실컷 게임도 하고 늦잠도 자고 나들이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엄마아빠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어도….”(소 씨)

부천=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새소망의 집은…

경기 부천시 유한대학 울타리를 끼고 자리한 새소망의집은 아동양육시설이다. 1961년 전쟁고아를 위한 보육원으로 시작됐다. 요즘에는 부모가 없는 아동뿐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결손가정(기초생활수급자) 아동 127명이 9개 소년소녀의집에 10여 명씩 모여 살고 있다. 각 소년소녀의집에서는 부부 사회복지사가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유치원생부터 들어올 수 있으나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야 한다. 시설 옆에 올해 처음으로 ‘자립의집’을 만들어 2년간 머물며 취업 및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도록 했으나 이에 대한 정부지원은 전혀 없다. 032-342-6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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