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뭔가 나올 법도 한데…. 이번에는 좁은 계단길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자 마침내 일군의 한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펼친 것처럼 날렵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한옥의 처마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31. 이곳에는 90여 채의 한옥이 밀집돼 있다. 이곳은 북촌(北村)에서도 한옥의 맵시가 가장 예쁘게 드러나는 곳이다.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인 집도 여럿 눈에 보인다.
설날 연휴 무렵 한옥을 체험하고 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한옥마을을 소개한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북촌은 행정구역이 아니다. 북촌은 4대문 안에서 북으로 북한산 자락을, 남으로 종로 거리를, 동서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로 안국동 가회동 재동 계동 삼청동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고 해 북촌으로 불리며 현재 900여 채 남짓한 한옥들이 남아 있다. 남촌에는 주로 ‘남산골 선비’로 불리는 가난한 선비와 유생들이 살았던 반면 북촌에는 종친이나 사대부 등 ‘잘나가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다고 한다.
북촌의 매력은 서울에서 한옥의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는 점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이 전시공간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북촌은 ‘살아있는’ 한옥 생활공간이다.
북촌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옥과 현대식 건물, 이곳에 터전을 잡은 장인(匠人)들의 작업실과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구멍가게가 함께 들어서 있다. 가회동 11에는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유진(최지우)의 춘천 집으로 등장해 일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집도 있다.
○ 한옥 체험
북촌 한옥마을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불교미술박물관→오죽공방→궁중음식연구원→가회박물관→매듭공방 등으로 이어지는 예술, 문화공간 코스를 선택하면 2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북촌문화센터를 시작으로 가회동 31 한옥촌→윤보선가(家) 등 한옥체험 코스는 3시간 정도 걸린다.
이 지역에는 게스트하우스 다섯 곳이 있는데 숙박을 하면서 한옥체험이 가능하다. ‘북촌 게스트하우스’는 싱글 룸 2개, 더블 룸 2개 등 5개의 방이 있고 마루는 TV 시청과 간단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돼 있다. 3만∼5만 원. 02-743-8530
‘우리집 게스트하우스’는 북촌 거주 장인들과 함께하는 전통 공예품 만들기 체험, 주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조촐한 가족 파티 등 비교적 느슨하고 여유로운 일정을 통해 북촌의 문화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5만 원. 02-744-0536
‘낙고재’는 개별 방이 아니라 한옥 전체를 빌려야 한다. 4, 5인 가족이 함께 독립된 한옥공간의 정취를 맛볼 수 있지만 1인당 16만5000원(아침식사 포함)으로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02-742-3410
‘서울 게스트하우스’(02-745-0057)는 100년 전에 지어진 대표적인 한옥민박집이고, ‘안국 게스트하우스’(02-736-8304)는 경복궁, 운현궁, 창덕궁 등 문화 공간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 이상 3만∼7만 원.
○ 북촌 두 배 즐기기
일단 북촌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 문화센터’(02-3707-8270)를 찾는 게 좋다. 한옥의 기본 구조를 재현한 문화센터에서 북촌의 주요 문화공간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북촌 문화공간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장인들의 터전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각궁공방’에서는 조선 숙종 시대부터 11대에 걸쳐 활을 만들어온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3호 궁장(弓匠) 기능보유자 권무석 선생이 안내하는 활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 옆에는 ‘오죽공방’이 있다. 오죽은 검은색 대나무류의 희귀식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오죽장 기능보유자 윤병훈 선생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기능보유자인 황혜성 선생의 ‘궁중음식연구원’은 사극 ‘대장금’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궁중 음식의 세계로 안내한다.
‘작은차 박물관’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집터에 새롭게 조성된 개방 한옥에 자리 잡은 공간.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차와 고미술품을 소개하고 있다.
‘가회박물관’은 민화와 부적 등 옛 사람들의 신앙 세계를 알 수 있는 작품을, 동림매듭박물관은 전통 매듭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993년 개관한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은 조선시대의 불화 및 불상, 조각, 공예품을 비롯하여 한국 불교 미술 문화의 전반을 나타내는 미술품 등 5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전국서 한옥추억 체험하세요▼
○ 경북 안동 지례예술촌
1663년 조선 숙종 때 세워진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 종택 등 10여 동 125칸.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몰리자 1989년 종택 등을 인근으로 옮겨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많이 이용됐지만 요즘에는 일반인들의 이용도 많다. 설과 추석을 빼고도 1년에 10여 차례 제사를 지내며 이때 방문하는 것이 좋다. 온돌방 17개.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2만∼5만 원. 054-822-2590
○ 경북 안동 수애당
1939년 세워진 민가로 조선 말기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한옥. 아궁이에 직접 군불을 지피고 고구마와 감자 등을 구워먹을 수 있다. 투호놀이 널뛰기 굴렁쇠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매일 오후 8시에는 한지공예 등 체험교실이 열린다. 숙박비는 4만∼9만 원. 근처에 하회마을, 도산서원이 있다. 054-822-6661
○ 전주 한옥마을
무려 900여 채의 전통 한옥을 비롯해 전주전통문화센터,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양사재, 전주 전통술 박물관, 전주공예품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안마당 등이 있는 전통한옥. 각종 체험 프로그램과 상설 공연이 많다. 숙박은 2인 기준 6만∼12만 원. 개별적인 숙박도 가능하지만 각종 모임 등 단체 숙박을 위한 대관도 가능하다. 063-287-6300
▽양사재=향교의 부속 건물로 유생들을 교육했던 공간이다. 2002년 100여 년 전의 원형을 복구했다. 한옥 민박과 야생차 보급, 문화관광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3, 4인 가족 기준으로 5만5000∼6만5000원. 063-282-4959
○ 경북 청송 송소 고택
이 고택은 ‘삼부자집’으로 불리는 곳으로 3000여 평에 99칸 규모. 1880년경 송소 심호택이 지은 건물로 민가로는 최대 규모 수준이다. 민속놀이 5가지를 묶어 투숙객이 함께 놀이를 즐기는 ‘민속놀이 5종 경기’ 프로그램도 있다. 숙박 요금은 2인 기준으로 행랑채와 작은방은 4만∼5만 원, 사랑채는 7만∼9만 원, 안채와 분리된 별채는 18만 원으로 가족 단위로 묵을 수 있다. 054-873-0234
○ 경북 영주시 청구리 선비촌
상류층 집 4채, 중류층 집 3채, 서민층 집 5채에서 묵을 수 있다. 초가와 기와집의 2인용 또는 4인용 방 36개를 숙박체험용으로 사용. 1박에 2만∼5만 원 선. 전통예절, 한문 배우기,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천연염색, 다도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돼 있다. 054-638-5831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전태종(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년) 이지연(서울대 정치학과 3년) 박은영 씨(경희대 정치외교학과 3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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