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물자연휴양림(제주시 봉개동)의 삼나무 숲은 풍성히 내린 눈으로 온통 눈 세상이었다. 하얗게 변한 눈길 산책로에서 썰매 타는 두 딸을 돌보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휴양림 뒤편의 절물오름 꼭대기(650m). 나무 전망대 주변은 까마귀 세상이었다. 게서 바라다본 중산간의 넓고도 느릿한 구릉과 그 위로 부드럽게 돌출한 크고 작은 오름들.
중문(서귀포시)의 펜션에서 보낸 겨울밤은 특별히 길었다. 다음 날 한라산의 윗세오름을 오를 참이었는데 비 예보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튿날, 예보는 보기 좋게 틀렸고 백록담 분화구 외벽은 중문에서도 또렷했다.
윗세오름은 1740m 높이의 거대한 오름. 그 상단인 선작지왓(분화구 외벽에서 떨어져 나온 조면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생자갈의 고산평원·해발 1700m)에 오르면 철옹성처럼 치솟은 백록담의 부악(釜岳)이 멋지게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그뿐일까. 선작지왓을 오르는 도중에 바라다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 멀리 삼방산과 형제섬, 그리고 가파도와 마라도는 물론 영실계곡의 오백나한과 병풍바위는 감동적이다.
해발 1100m의 영실삼거리부터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 입구인 영실휴게소까지 이어진 도로(5km)는 눈에 덮인 채 멋진 산책로로 변해 있었다. 숲 속 등산로에 접어들자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은 눈길이 이어진다. 길 옆은 허리까지 빠질 만큼 눈이 깊다. 가파른 산길로 20분쯤 오르자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의 기묘한 바위로 감싸인 영실계곡 능선이다. 게서 등 뒤로 눈을 돌리니 산과 바다가 두루 조망된다.
해발 1600m의 산등성. 거센 바람에 키 작은 관목은 땅을 기고 그 나무에 눈꽃이 피어 세상은 온통 설국을 이룬다. 가까이 내려다뵈는 불래오름과 어슬렁오름, 그 뒤로 펼쳐지는 중산간 지대의 유려한 곡선. 그 느릿한 산등성 자락이 하얀 눈 덕분에 더더욱 유려하다. 다시 오르기를 30분. 눈보라에 실린 눈이 덕지덕지 뒤덮여 괴물형상으로 변한 구상나무의 수빙(樹氷) 숲을 지난다.
이윽고 광대한 설원. 윗세오름이다.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선작지왓 눈밭 위로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백록담 분화구뿐. 세상은 온통 하얀데 이 부악만 유독 검다. 그 무채색의 세상 속에서 또 다른 흑백의 대비가 이채롭다. 까마귀다. 용케 이 설산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모습이 장하기만 하다.
‘죽음을 대면하기 전에 느낀 아름다움은 지금 느끼는 아름다움과 결코 같지 않다’고 한 김영갑 씨의 말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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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작가가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폐교에 만든 사진전시관.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 12번 국도상 표선과 성산 중간의 삼달교차로에서 바다 반대쪽으로 1.6km지점. www.dumoak.co.kr, 064-784-9907
▽윗세오름 겨울 등반=영실코스 출발지는 영실매표소로부터 2.5km 떨어진 영실휴게소(064-713-0510). 입산은 오전 5시 30분∼낮 12시만 허용. 윗세오름(휴게소·064-743-1950)까지 3.8km. 등반에 1시간 30분∼2시간, 하산에 1시간∼1시간 30분 소요. 아이젠은 필수. △찾아가기: 영실삼거리(99번 국도)∼영실매표소∼영실휴게소(5km). 승용차는 영실휴게소까지 오른다(날씨에 따라 다름). 체인 필수. 윗세오름 휴게소에서는 컵라면(1500원) 판매. 입산 여부는 반드시 사전에 한라산국립공원 영실관리소(064-747-9950)에 문의하는 게 좋다.
▽절물자연휴양림=제주시내에서 20분 거리. 동부관광도로(97번 국도)에서 명도암(관광목장)과 한화리조트 방향. 관리사무소 064-750-7587
제주=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네가지 빛깔 테마 펜션 ‘재즈마을’▼
서귀포의 한적한 감귤 밭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재즈마을(www.jazzvillage.co.kr).
원목 외벽에 격자형 유리창이 예쁜 2층형 목조 펜션이 서 있다. 코커스패니얼과 맬러뮤트 종 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척 맨지오니(퓨전재즈 아티스트)의 우아한 플뤼겔호른 연주가 들린다. 24시간 365일 음악이 정원을 채운다. 펜션 네 채(총 25실)는 이름과 테마가 제각각이다. ‘재즈시네마’는 DVD플레이어, ‘노래하는 산호’는 책, ‘더왈츠’는 미니컴포넌트, ‘푸른 지붕’은 유명 화가의 그림(복사본)과 화집을 갖췄다. 객실은 △펜트하우스(23평) △로맨틱원룸(15평) △럭셔리투룸(30평) 등. 야외에 바비큐장과 영화상영장이 있다.
나무 향 은은한 원목 벽 실내는 햇볕이 쏟아져 들어와 밝고 아늑하다. 옆 과수원에서 감귤 따기, 화덕 불에 구워 먹는 군고구마 파티, 절로 잠이 들 만큼 편안한 침대와 따뜻한 이불. 재즈마을은 허니문에도 좋은 편안하고 아늑한 별장이다.
▽위치=서귀포시 상예동. 중문관광단지에서 3km.
▽찾아가기=공항∼서부관광도로(95번)∼창천삼거리∼12번 국도(5분 거리). 064-738-9300
▽이벤트 △3대(代)가족패키지: 3박(45만 원) 시 2박 요금(30만 원)만 받음. △눈꽃패키지: ‘항공권(서울∼제주 왕복)+재즈마을 2박(15평형)+렌터카(3일·EF소나타)’로 구성. 1인당 17만 원부터. 이달 말까지. 예약 및 문의는 대장정여행사(www.djj.co.kr) 1577-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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