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 아줌마]<下>아줌마의 눈과 입

  • 입력 2005년 2월 3일 18시 00분


어린이 성교육전남 해남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남 여성의 소리’ 회원인 조현자 씨가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해남 여성의 소리
어린이 성교육
전남 해남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남 여성의 소리’ 회원인 조현자 씨가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해남 여성의 소리
《광주에는 ‘광주천 지킴이-모래톱’이라는 단체가 있다. 2003년 광주의 유일한 하천인 광주천의 오염을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회원 23명 중 15명이 주부다. 이들은 매달 2번씩 일요일 새벽에 광주천에 모여 2∼3시간씩 수질 상태와 주변 식물의 상태를 꼼꼼히 조사하는가 하면 모니터링 일지도 작성한다. 회장을 맡고 있는 현병순 씨(38·여)는 “환경 문제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터전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주부들의 관심이 특히 높다”며 “‘식물이름 지어보기’ ‘토끼풀로 반지 만들기’ 등 아이들과 함께 하천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지킴이’ 노릇을 하던 아줌마들이 이제는 사회의 ‘눈’이 돼 파수꾼으로 나서고 있다.

점점 폭력적이고 거칠어지는 사이버 환경에 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인 아줌마들도 있다. 2003년 ‘어머니 파파라치단’으로 운영되다 지난해 4월 이름이 바뀐 ‘어머니 사이버지킴이’는 전체 회원 500명 중 85%가 주부다.

아이 기저귀는…
아줌마닷컴 회원 중 ‘생활마케터’에 참가하고 있는 주부들이 모 회사에서 출시한 기저귀의 성능에 대해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아줌마닷컴

이들이 신고하는 유해한 사이버 사이트와 웹 게시물은 월평균 1500여 건에 육박한다. 이 중 3분의 1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이용정지, 경고, 사이트 삭제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2년간 활동하고 있는 오채금 씨(40)는 “아이들의 무분별한 인터넷 서핑을 감시할 수 있는 곳은 가정밖에 없고, 가정에서 그 역할을 담당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작게는 내 아이들을 위한 일이지만 크게는 모든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아줌마들의 ‘눈’은 곳곳에서 번뜩인다. ‘소비자시민의 모임’의 70%,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90%, 서울YMCA ‘건전비디오를 연구하는 모임’의 100%가 주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아줌마들의 ‘입’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남 해남군에는 청소년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해남 여성의 소리’라는 단체가 있다. 26명의 회원 대부분 30, 40대 아줌마들.

매주 목요일 저녁 3∼4시간씩 성교육과 관련한 세미나를 갖는다. 이렇게 공부해 온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남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찾아 다니며 아이들에게 성교육도 하고, 교사와 학부모에게는 성교육 방법에 대해 강의도 한다.

초기 멤버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명숙 씨(40)는 “성교육을 한 번이라도 받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확연히 다르다”며 “올바른 지역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모이고 생각하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안의 수다’로만 인식돼 온 아줌마들의 걸쭉한 ‘입담’이 기업의 마케팅 주체로도 확대되고 있다.

각 기업체에서는 아줌마들의 ‘입소문’을 잡기 위해 주부모니터 등 주부들을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개발하고 있다. 주부들이 단순한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의 주체’로까지 바뀌고 있는 것.

커피회사의 경우 주부모니터단을 운영해 수시로 커피 맛과 브랜드 이미지에 대해 시장 조사를 하고 있고, 의류회사들도 아줌마들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직접 아줌마들을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 참여시키고 있다.

황인영(黃仁暎) 아줌마닷컴(www.azoomma.com) 대표이사는 “아줌마들은 생활 속에서 가장 다양한 소비를 하고 있는 동시에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평균 모임이 5개 이상이 되는 등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주변에 정보를 전파하는 중요한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아줌마들의 힘이 더욱 폭발적으로 발휘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아줌마의 입소문을 겨냥하라”▼

“아줌마의 지역밀착 네트워크는 남성에 비해 3배 이상 강하다.”

전국적으로 50만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인터넷 마케팅회사인 아줌마닷컴에서는 5년 전부터 ‘아줌마 마케팅 랩’을 운영하고 있다. 아줌마들의 ‘입소문’과 그 소문을 널리 전파하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에서 의뢰를 받은 상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다.

5명이 근무하는 이곳에서는 아줌마 회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생활마케터’ 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 회사의 의뢰를 받고 야심작으로 내놓은 우유를, 올해는 외국 브랜드 인지도에 밀리고 있는 국내 브랜드의 기저귀를 중점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활동 중이다.

황상윤 마케팅 랩 실장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부들은 단순한 모니터뿐 아니라 좋은 상품인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처음으로 ‘아줌마 입소문 마케팅 실전세미나’를 열었다. 동창 모임, 학부모 모임, 문화센터 모임, 동네 모임, 남편직장 모임 등 평균 5개 이상의 모임을 갖고 있는 한국 아줌마들의 네트워크와 입을 이용한다는 입소문 마케팅 세미나는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마케팅 랩에서 1기 아줌마 생활마케터로 활동했던 추효경 씨(37)는 “TV나 신문 광고와 달리 아줌마들의 입소문은 빠르면서도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아줌마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허스토리’ ‘두하우스’와 같은 입소문 마케팅 에이전시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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