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911’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은 미국 감독 마이클 무어의 첫 다큐멘터리는 ‘로저와 나’라는 작품이었다. 자동차 회사 GM의 회장 로저 스미스가 미시간 주 플린트에 있는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한다고 발표한 뒤 플린트 시민들이 겪는 실직과 불황, 그리고 빈곤을 다룬 이 작품에는 끔찍한 장면이 나온다. 여행용 트레일러에 사는 한 여성이 토끼를 엽기적으로 죽인 뒤 가죽을 벗겨 파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던 1900년대 초반도 아닌 1980년대 후반, 그것도 미국에서의 일이다.
이 책의 처음 몇 장을 읽다 보면 그런 장면이 머리에 저절로 떠오른다. 마이클 무어가 할리우드 영화나 뉴스에서 보는 미국과는 다른 모습을 필름으로 추적했다면, 저자는 미 대륙을 종횡무진하면서 미국의 이면을 글로 풀어냈다.
1990년대 후반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3년간 지내면서 저자가 본 미국이 ‘세계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성공한 계층이 사는’ 레드(공화당을 나타내는 색) 아메리카였다면, 회사를 나가 지난해 여름 돌아본 곳은 ‘못사는 농촌이나 쇠락한 공장지대의’ 블루(민주당을 나타내는 색) 아메리카였다.
저자의 발걸음이 닿는 곳들은 미국의 지리적 중심이거나 인구의 중심이고, 미국을 표상하는 맥도널드와 월마트의 발생지이지만 그곳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농촌이 해체되면서 인구가 몇 백 명에 지나지 않아 물리적으로 비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첨병인 기업들의 매정한 영업 및 관리 방식으로 인간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진정 블루(blue·우울한) 아메리카다.
저자는 그러나 블루 아메리카를 ‘일하는 사람들이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고 의료와 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사회’라고 정의한다. 푸른 희망으로 가득한 곳이다. 저자는 그 희망의 조각을 디트로이트의 시민인권단체인 ‘포커스 호프’에서 본다.
이 책을 보는 독자 중에는 저자가 너무 미국의 어두운 면만을 드러냈다고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으레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법. 그동안 미국에 대한 편식에서 벗어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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