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겔랑은 프랑스 파리 사람이다. 그의 집이 대대로 향수를 만들매, 온갖 꽃이며 정유(精油)의 향을 벗으로 삼으며 자랐다.
장 폴이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코냑으로 유명한 에네시 경이 시음회에 초대하매, 그가 어린지라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냄새로써 으뜸가는 코냑을 맞혔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가로되 “역시 향수 집 아들이로다” 하였다.
그가 장자(長者) 되지 못한 고로 감히 가업 이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어느 날 황수선(黃水仙) 정유가 감쪽같이 사라진지라, 그의 조부가 크게 상심하였다. 장 폴이 이에 몇 가지 꽃의 정유와 합성 원료를 섞어 황수선과 똑같은 향을 만들었다. 조부가 대경(大驚)하여 장 폴의 부친에게 전화를 해 이르되 “항차 가업을 이을 아이는 장 폴이 되리라” 하였다.
자고로 음악가는 여러 소리를 섞어 화음을 빚고 조향사(調香師)는 자연의 향내를 섞어 향수를 빚나니, 어찌 그를 향기의 음악가라 일컫지 아니하리오. 그가 말 타기를 즐긴지라 말의 살 냄새와 가죽 냄새로 ‘아비 루즈’를 만들고, 장차 아내 될 여인을 만나매 봄꽃의 향에 감귤과 재스민 향을 더하여 ‘샹다롬’을 빚으니 뭇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베티베’를 만들 때의 일이다. 절친한 벗에게 새 향을 시험키를 청하니, 며칠 뒤 이 벗이 대로(大怒)하여 찾아온지라, 장 폴이 “향이 잘못 되었는가” 물었다. 이에 벗이 가로되, “내 정인(情人)이 이 향을 진작 알고 있다 하니, 일찍이 이 향을 바른 자는 나와 그대뿐이라, 어찌 여인이 이 향을 알겠는가” 하였다. 둘이 사랑을 버리고 우정을 따르니, 여인이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놓침과 같았다.
그가 나이 들어 먼 길 가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이국의 향을 찾는 여행이라. 가로되 “좋은 향은 세상에 두루 흩어져 있는 것이요, 사철의 운행에 따라 처음 거둔 신선한 재료를 찾아가고자 하노라” 하였다.
사향을 찾아 네팔을 거듭 유(遊)하고, 오렌지 정유를 찾아 낙타에 올라 튀니지를 가로지르니, 종내는 향료를 찾는 여행과 영감(靈感)을 찾는 여행이 다르지 않은지라, 튀니지의 원형 경기장에서 본 검투사의 환영(幻影)으로 ‘더비’ 향수를 아우르고, ‘프티 겔랑’의 향은 시칠리아 섬 실라의 창해(滄海)를 품기에 이르렀다.
그가 2002년 예순다섯의 나이로 퇴임한 뒤에도 회사 고문을 지내며 원료 관리에 빈틈이 없으니, 이는 일찍이 스스로 다짐한 바인지라. 그가 자전(自傳)인 이 책에서 가로되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 감정들로 빚어 낸 행복의 연금술을 전해 주고, 향수가 환희와 빛의 근원이 되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바람 이외엔 어떤 욕심도 없다” 하였다.
모처럼 꽃과 사람의 향기가 두루 온전히 담긴 책을 대하였나니, 무릇 향기 있는 벗들은 두루 일독(一讀)하실진저.
원제는 ‘Les Routes de mes parfums’(2002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장 폴 겔랑이 소개하는 겔랑 향수의 ‘주역’ 원료들▼
●사향=검은 갈색을 띤 사향노루의 항문샘에서 분비되는 물질. 흥분제, 최음제 등의 용도로 사용됐다. 대체로 향수에 들어가는 다른 향들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소량만을 배합한다.
●용연향=향유고래의 배설물로 수십 년 동안이나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다. 대리석 ‘마블링’처럼 아름다운 무늬가 있다. 사향과 반대로 그 자체로는 향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여러 향의 배합에서 ‘크림’처럼 전체를 부드럽게 해 주는 효과를 낸다.
●백단향=단향과의 상록수에서 나오는 정유. 나무에서 나오는 향료로는 향이 강한 편이다. 불교에서 특히 귀하게 다루는 향이다.
●재스민=겔랑의 상품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향. 이집트가 주산지였지만 최근에는 인도 케릴라 지역의 것을 최고로 친다.
●베르가모트=쓴 오렌지 나무에 레몬 나무를 접목한 것. 열매를 강판에 갈아 원심분리기에 넣어 정유를 추출한다. 알려진 바와 달리 이탈리아의 도시 ‘베르가모’와는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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