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공포영화의 전형… 영화 `레드 아이`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50분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열차사고 후 16년이 지났다. 개보수 후 운행되던 사고열차가 폐기되기 전 마지막 운행일. 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미선(장신영)은 판매원이 되어 이 기차에 오른다. 열차는 터널 안에서 급정차한다. 이후 미선의 눈에는 1980년대 옷차림과 머리모양, ‘1988년 7월 16일’이란 날짜가 찍힌 신문을 읽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승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선과 열차 차장 찬식(송일국)은 열차의 비밀에 접근한다.

18일 개봉되는 ‘레드 아이’에는 ‘공포영화의 정도(正道)를 간다’는 미덕이 있다. 얼토당토않은 반전에 집착하지 않을 뿐더러, 불쑥 큰 소리로 관객을 놀라게 한 뒤 이걸 무섭게 만든 걸로 착각하는 ‘깜짝 놀랐지 증후군’을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희생자들은 죽을 시점에 죽고, 귀신은 나타날 시점에 나타나고, 관객은 놀랄 타이밍에 놀라는 이 영화는 정직하다. 하지만 이 영화엔 본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무섭지 않다는 점이다.

극중 인물들은 “어쩌면 우리는 당시 그 혼령들과 달리는지도 몰라요” 하고 조바심내지만 정작 관객은 내용을 뻔히 짐작할 수밖에 없는 이 영화가 공포영화로서 걸 수 있는 승부처는 세 곳이다. 하나는 열차라는 폐쇄공간의 공포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고, 둘은 미선과 찬식의 안타까운 사연에 집중해 페이소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셋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창조적 귀신과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레드 아이’는 셋 다 절반의 성공이요, 절반의 실패다. 열차란 공간은 관객을 압박하지 못하고 열려 있으며, 공포 이미지는 다소 관습적이다. 뭔가를 말하려다 뚝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미선에 얽힌 이야기라는 줄기 사연을 물고 들어가는 구심력이 약할 뿐 아니라, 밝혀지는 미선의 가족사 자체도 별로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여린 듯 진한 존재감을 보여준 장신영은 예쁘고 착하게 보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깊고 좀 더 차가우며 좀 덜 낙천적으로 보였어야 했다. ‘링’(일본영화 ‘링’의 리메이크)의 김동빈 감독 연출.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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