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로 땋아 위로 살짝 삐친 빨간 머리, 유난히 큰 앞니 두 개, 장난스러운 얼굴 가득한 주근깨, 그리고 항상 짝짝이인 양말….
‘말괄량이 삐삐’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30, 40대가 된 1970년대 후반의 ‘꼬마’들의 눈을 TV에서 떼지 못하게 했던 외화 시리즈의 주인공. 21세기의 꼬마들도 케이블TV를 통해 ‘삐삐’를 만날 수 있지만 다른 볼거리가 없던 그때 그 시절의 꼬마들이 느꼈을 재미와 기쁨을 결코 알 수는 없으리라.
외화 시리즈의 원작인 ‘삐삐 롱 스타킹’은 스웨덴의 유명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인기 동화다.
이 책은 제목과 ‘너무 늦게 보내는 팬레터’라는 저자 후기에서도 알 수 있듯, 30대 초반인 저자가 2002년 초 세상을 떠난 작가 린드그렌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 동화’다.
주인공은 어릴 때 아빠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이비읍’이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말괄량이 삐삐’의 노래를 열창하는 엄마를 본 뒤 ‘삐삐 롱 스타킹’을 읽게 되고 이후 책읽기의 즐거움도 알게 된다. 비읍이는 린드그렌이 쓴 동화를 헌책방에서 하나씩 사 모으며 그의 작품에 빠져든다.
린드그렌의 팬이 된 비읍이의 꿈은 그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스웨덴으로 가 린드그렌을 직접 만나 보는 것. 비읍이는 자신처럼 어린 시절부터 린드그렌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작품을 수집하는 헌책방 언니를 사귀게 되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간다.
비읍이의 일상을 통해 대도시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과, 친구들 사이의 갈등과 우정이 따뜻하게 그려졌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 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창작동화는 각 장의 제목을 모두 린드그렌의 작품에서 따왔다. 저자는 린드그렌의 동화를 비읍이의 이야기 속에 영리하게 녹여냈다.
비읍이가 엄마와 싸운 뒤 가출을 꿈꾸는 대목에서는 린드그렌의 동화 ‘펠레의 가출’이 자연스럽게 인용된다. 또 비읍이가 학교에서 글짓기를 하면서 린드그렌 동화 중 아름다운 구절을 도용하는 장면을 통해 은근슬쩍 린드그렌의 동화 한 토막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능숙한 솜씨로 린드그렌의 동화를 작품 속에 섞어 넣은 덕분에 ‘말괄량이 삐삐’를 본 적이 없는 독자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는 점. 늘 TV만 끼고 사는 엄마가 책을 좀 읽기를 바랄 만큼 주인공 비읍이는 책에 흠뻑 빠져 사는 소녀다.
책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을 만큼 글재주가 있는 비읍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독서 체험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