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S다이어리’와 이대 앞길

  • 입력 2005년 2월 1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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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던 남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였는지 묻던 진희(김선아)는 자기가 지불했던 여관비 등 데이트 비용을 청구함으로써 그 남자들에게 복수하려다 결국은 그들을 용서하고 받은 돈을 돌려준다. 진희가 ‘하찮은 남자들’에 대한 복수와 용서를 생각하며 걷는 길은 서울 이화여대 앞 길이다(맨위). 당당한 멋쟁이 여성들이 즐겨 찾는 거리인 이대 앞길은 요즘 대학 정문 공사 등으로 다소 어수선하다. 원대연 기자
사귀던 남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였는지 묻던 진희(김선아)는 자기가 지불했던 여관비 등 데이트 비용을 청구함으로써 그 남자들에게 복수하려다 결국은 그들을 용서하고 받은 돈을 돌려준다. 진희가 ‘하찮은 남자들’에 대한 복수와 용서를 생각하며 걷는 길은 서울 이화여대 앞 길이다(맨위). 당당한 멋쟁이 여성들이 즐겨 찾는 거리인 이대 앞길은 요즘 대학 정문 공사 등으로 다소 어수선하다. 원대연 기자
《남자친구에게서 그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은 진희(김선아)는 그동안 사귀었던 남자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자기를 진정 사랑했는지 묻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행히도 첫 남자는 그저 욕정이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남자는 왜 찾아왔느냐며 화를 낸다. 마지막 남자는 “쪽팔렸다”고 한다. 비 내리는 밤 진희는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으로 이어지는 길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밤새 눈물을 흘린다.》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면 돈을 내! 진희는 연애할 때 꼼꼼히 써둔 일기장을 토대로 자신이 쓴 데이트 비용을 일일이 계산해 과거의 남자들에게 청구서를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돈을 전부 받아내지만 진희는 실컷 울고 난 뒤 돈을 다시 돌려보낸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소중함으로 간직했던 그 추억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대로 삭제할 수 없기에 이렇게 다시 돌려보냅니다.’

카메라는 진희가 보낸 편지와 돈을 받고 복잡한 표정을 짓는 옛 남자친구들의 얼굴과 사람이 북적대는 ‘이대 앞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진희의 모습을 번갈아 잡는다.

웃길 것 같지만 별로 웃기지 않는 영화 ‘S다이어리’(2004년 작)에서 이대 앞길은 주인공 진희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리다.

제작진이 영화 속의 밤낮 장면 촬영장소를 일부러 이대 앞길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밤 장면 촬영을 위해서는 도로가 깨끗하면서 해가 져도 주변이 어둡지 않은 장소를, 낮 장면 촬영장소는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활기찬 거리를 물색했는데 그러다보니 밤낮 장면 모두를 이대 앞길에서 찍게 됐다는 것이다.

워낙 복잡한 거리라 촬영 시 행인을 통제할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다. 김선아를 행인들 사이를 걷게 하면서 1t 트럭에 숨겨 놓은 카메라로 몰래 찍었다. 하도 사람이 많아 행인들은 옆에 김선아가 걸어가는지, 영화를 찍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이대 앞길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들의 거리다.

미용실, 옷 가게, 의류수선점, 패션소품점 등이 점점 늘어나 자연스럽게 ‘패션의 거리’로 특화됐다. 최신 유행 스타일의 옷을 싸게 살 수 있는 보세상품점이 많아 교복 차림으로 옷을 고르는 여고생들이나 단체 쇼핑을 하는 중국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명문여대 앞답지 않게 소비문화로 가득 차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대 앞을 걸으면 젊음의 싱그러움과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여대생 취향에 맞춘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예쁜 카페들이 많다. ‘S다이어리’에서 동성애자 커플이 운영하는, 진희가 우울할 때마다 찾는 카페는 이대 후문에서 길을 건너 금화터널 쪽으로 50m 거리에 있는 ‘쉬즈 가든’. 식사와 허브 차, 가구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이 가게는 전체가 꽃과 곰인형으로 꾸며져 있다. 02-363-9618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진희가 번역한 책의 저자 사인회가 열리는 곳은 이대 후문에 있는 북 카페 ‘프린스턴스퀘어’(www.princetonsquare.co.kr)다. 지하 1층에는 토론과 그룹 스터디를 위한 공간이, 1층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힌 서고가 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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