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릴 제77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지난해와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면 판타지에서 현실로의 복귀일 것이다. 지난해 ‘반지의 제왕’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던 아카데미가 올해는 현실의 영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라인업에 맞닥뜨린 것.
● 관전포인트 1. 감독상 - 스코시즈 vs 이스트우드
‘택시드라이버’ ‘갱스 오브 뉴욕’, 심지어 다큐멘터리 ‘블루스’와 ‘밥 딜런’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사 쓰기에 충실해 왔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을 오스카는 너무 오래 외면해 왔다. 젊은 혈기에 만든 ‘택시 드라이버’가 좀 삐딱한 현실보고서였다는 잔영 때문일까? 63세의 스코시즈 감독이 만든 ‘에비에이터’는 모범적이다. 전통도 충실히 따랐다. ‘검역(quarantine)’이란 단어의 철자를 하나씩 외우는 ‘에비에이터’ 속 하워드 휴즈의 모습에는 “로즈버드(rosebud·장미꽃봉오리)”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쓰러진 ‘시민 케인’(1941년 작)의 모습마저 겹쳐진다.
스코시즈 감독이 ‘미국 역사의 관찰자’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늘 스크린 속에서 미국적 가치를 ‘겪으며 산’ 사람이었다. 때론 조국을, 때론 가족을, 때론 정의를 지키기 위해 그가 총을 드는 이유는 늘 너무도 명쾌해 보였다. 올해 칠순인 그가 늙은 트레이너 역을 맡아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바로 너 자신”이다.
과거의 영광에서 미국의 갈 길을 찾으려는 스코시즈 감독과 삶이 나를 내팽개칠수록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독립적 미국인 이스트우드. 아카데미는 누구의 연출과 관점에 점수를 줄까?
● 관전포인트 2. 최우수작품상 - 에비에이터 vs 밀리언 달러 베이비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은 연동된다. 아카데미가 스케일을 선택한다면 결과는 ‘에비에이터’다. 미국 시민정신의 회복 같은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193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명소였던 ‘코코넛 그로브’의 재현 등으로 할리우드에 예찬을 바친 공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체육관은 낯익다. 록키가 아메리칸 드림을 키우던 그 체육관과 닮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 서사가 필요한 때. 골든글로브는 최우수작품상을 스코시즈 감독에게 안겼다.
● 관전포인트 3. 남우주연상 - 디카프리오 vs 폭스
올해 아카데미의 사회자로 흑인 수다쟁이 배우 크리스 록이 선정된 것은 어쩐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민족 등 소수자 우대정책)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만약 제이미 폭스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다면? 순전히 자기 능력의 결과다. 2004년 세상을 떠난 레이 찰스도 위대했지만 그를 연기한 제이미 폭스도 신들렸다.
스코시즈 감독은 “‘에비에이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마침내 사내가 됐다”고 평했다. 여전히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목소리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제 그의 얼굴에서는 ‘나이의 피곤’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스물네 살에 죽은 제임스 딘의 그림자에서 훌쩍 벗어났다.
● 관전포인트 4. 여우주연상 - 스웡크 vs 윈즐릿 vs 베닝
1999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첫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받으러 나왔을 때 하마터면 힐러리 스웡크를 못 알아볼 뻔했다. 너무 예뻐서.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그녀가 두 번째 오스카를 타러 나온다 해도 여전히 낯설 것이다. 트레이닝복에 머리를 질끈 묶었던 그녀를 드레스 차림의 스웡크, 어디에서 찾겠는가.
공식에 짜 맞춘 것처럼 너무 예쁘게 생겨서 연기력을 오히려 평가절하 당하는 케이트 윈즐릿. 털털한 모습으로 나온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마침내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몰표는 아니다.
영화 ‘줄리아 되기’의 아네트 베닝도 또 하나의 강력한 라이벌. 베닝은 1999년에 이어 또 한번 스웡크와 맞붙었다.
영화전문가 5인의 '아카데미 예감'-오동진 | ||
부문 | 예상 수상작(자) | 선정 이유 |
작품상 | 에비에이터 | 아카데미는 워낙 블록버스터급 전기영화를 좋아한다. 게다가 하워드 휴즈 얘긴데…. |
감독상 |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이런 작품을 만든 감독을 외면하기란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쉽지 않을 듯. |
남우주연상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비에이터’) | 아카데미가 아무리 진보했다한들 제이미 폭스(‘레이’) 같은 흑인 배우에게 또 한 번 최고상을 줄 용기는 없을 듯. |
여우주연상 | 힐러리 스웡크(‘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이 여배우 외에 ‘줄리아 되기’의 아네트 베닝이 있지만 아카데미는 코미디보다는 드라마를 선호하니까. |
김봉석 | ||
작품상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클린트 이스트우드(감독)의 최고작. |
감독상 | 마틴 스코시즈(‘에비에이터’) | 유난히 운이 없었던 그에게…. |
남우주연상 | 제이미 폭스(‘레이’) | 얼마 전 죽은 레이 찰스의 모든 것을 재현했다. |
여우주연상 | 케이트 윈즐릿(‘이터널 선샤인’) | 치열한 경합. 그러나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그녀. |
황혜진 | ||
작품상 | 에비에이터 | 미국적인 것의 기원을 찾으려는 야심이 스펙터클과 만났다. |
감독상 |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 | 간결한 화술이 주는 감동, 거장이 느껴진다. |
남우주연상 | 제이미 폭스(‘레이’) | ‘레이’는 제이미 폭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영화. |
여우주연상 | 아네트 베닝(‘줄리아 되기’) | 라이벌 힐러리 스웡크와의 두 번째 아카데미 대결, 이번엔 베닝 차례? |
황영미 | ||
작품상 | 에비에이터 | 화려하다, 강하다. 그러면서도 거물의 내면적 불안을 놓치지 않았다. |
감독상 |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인물의 심정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 최대의 미덕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해냈다. |
남우주연상 | 제이미 폭스(‘레이’) | 신들린 연기란 바로 이런 것. |
여우주연상 | 힐러리 스웡크(‘밀리언 달러 베이비’) | 투지의 화신인 여자 권투선수에게 끌리게 했다는 점에서 단연 최고. |
강유정 | ||
부문 | 예상 수상작(자) | 선정 이유 |
작품상 | 에비에이터 | 잘나갔던 미국의 한때에 대한 애틋한 자기참조와 낭만. 무엇보다 미국이 지금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영화. |
감독상 |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 | 새옹지마, 호사다마의 인생사를 복싱 하나로 응축해 낸 솜씨. |
남우주연상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비에이터’) | 특수 분장 없이 20대부터 50대를 넘나든다. 조울증, 강박과 방탕의 광활한 캐릭터를 자기만의 스펙트럼으로 조명한 그의 승리. |
여우주연상 | 힐러리 스웡크(‘밀리언 달러 베이비’) | 그녀에 의한, 그녀를 위한, 그녀이기에 가능했던 미치도록 순수한 열정의 기록. |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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