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무서운 노인들’의 잔치였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75세에 최우수 작품상과 생애 두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거머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전부는 아니었다. 같은 작품으로 67세에 첫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은 흑인배우 모건 프리먼이 있었고, ‘에비에이터’로 편집상을 받은 델마 스쿤메이커는 65세의 할머니였다.
미국 할리우드의 노인들은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만 감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식뻘 혹은 손자뻘의 할리우드 신진들에게 꿈을 주었고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맨 투 맨’으로 가르쳤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서른 한 살의 힐러리 스웡크는 당초 이 작품 출연을 탐냈던 산드라 블록, 케이트 윈슬렛을 제치고 ‘저 친구한테는 뭔가 있어’라며 자신을 선택해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당신이 나를 믿어주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수상소감을 바쳤다. 서른여덟 살의 제이미 폭스는 시상무대에 올라 원로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내가 자네를 지켜보고 있다네”라는 그의 한 마디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털어놨다.
숙수(熟手)들의 솜씨는 책이나 문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몸소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은 하나의 교과서가 된다. 할리우드의 저력은 첨단의 컴퓨터그래픽이나 기발한 상상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장과 신진이 한 곳에서 공존하며, 늙은이의 지혜를 전하고 젊은 패기를 수혈 받아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데 있다는 사실을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보여주었다.
유엔의 인구전망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은 중간나이가 53.9세인 세계 최고령국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2005년의 한국 현실은 50세는 커녕 45세에 직업 정년을 걱정하는 ‘사오정’들이 양산되고 있다.
20년 이상 농익은 기술을 후속 세대에 가르치지 못하는 슬픔은 생계 이전에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허무는 일이며 사회적 손실이기도 하다. 선배의 업적과 과실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는 후배세대 역시 불행하다.
최고령 사회가 될 한국이 ‘나이 듦의 지혜’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얄팍하고 전문성 없는 늙은이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닌지, 2005년의 아카데미를 지켜보면서 부러움과 걱정이 교차한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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