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소설가 박경리 씨(사진)의 대하 역사소설 ‘토지’가 1969년 ‘현대문학’ 9월호에 처음 연재된 지 36년째를 맞는다. 이미 두 번이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데 이어 현재 방영 중인 TV 드라마(SBS)도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소설 ‘토지’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토지’에 대해서는 갖가지 연구들이 나왔지만, 최유찬(국문학) 연세대 교수가 이끄는 ‘토지 연구회’가 최근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한 연구 프로젝트 ‘토지의 미시 문화사적 연구’는 학술적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토지’론(論)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에는 최 교수를 비롯해 이승하 중앙대 교수, 이상진 방송통신대 교수, 조윤아 숙명여대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연구원, 최유희 중앙대 강사, 박상민 연세대 강사가 참여했다. 흥미 있는 논문 내용을 소개한다.》
▽‘토지’는 소설로 쓴 일본론=박상민 씨는 논문 ‘박경리 토지에 나타난 일본론’에서 원고지 2만9439장에 513만2142자에 이르는 ‘토지’의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1, 2위는 주인공 ‘서희’(2361회)와 남편 ‘길상’(2285회)으로 나타났다. 다음이 ‘일본’(2200회)으로 ‘중국’(520회)보다 훨씬 많았다. 일본인을 낮춰 부르는 ‘왜놈’도 598회나 나왔다. 결국 ‘일본’과 ‘왜놈’을 합치면 ‘토지’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다.
박 씨는 “‘토지’ 전체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라면서 친일파 조준구를 겨냥한 서희의 복수극 역시 항일을 빗댄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토지’ 전체의 일본론 가운데 가장 흥미 있고 비중 있는 인물은 일본인 오가다 지로. 오가다는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구해주고, 일제에 의해 투옥까지 됐던 비판적 코즈모폴리턴이지만 천황 비판만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선 여인 유인실은 그와 사랑하고 동침하지만 결혼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새에 그의 아들을 낳는다. 오가다는 아들이 커온 과정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크게 변하며, 형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인류를 위해 (일본은) 망해야 합니다. 군주가 현인신(現人神)인 이상 진리추구가 불가능합니다.” ‘토지’는 오가다를 통해 일본의 악행은 자체 정화(淨化)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박 씨는 분석했다.
▽관습을 깨는 남녀 결합=조윤아 씨는 논문 ‘토지에 나타난 결혼의 양상과 의미’에서 구한말부터 광복까지를 다룬 ‘토지’에 나오는 결혼(혹은 남녀 결합) 가운데는 겁탈, 야반도주, 계급이 다른 남녀의 혼인 등 이 시기의 관례에서 벗어난 극단적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령 서희 집안을 보면 최 참판 댁의 며느리 윤씨 부인은 동학의 영웅인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을 낳는다. 최 참판 댁의 후손인 최치수는 첫 부인과 사별한 뒤 별당아씨와 재혼하는데 별당아씨는 김환과 야반도주한다.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사이에 난 혈육이 서희다. 최 참판 댁의 재산을 가로챈 조준구는 서희에게 그의 꼽추 아들인 병수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 서희는 만주로 가서 재기한 후에 과거 하인이었던 길상과 결혼한다.
조 씨는 “‘토지’를 (전체적으로) 보면 죽음, 배신, 가난, 정치적 상황, 제도의 억압, 개인의 성품 때문에 불행하게 결혼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 같은 (그늘 진) 결혼(남녀 결합)은 신분차별 의식이 근간을 이루고 있던 시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규범 사이의 강렬한 충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만주에 대한 고토(故土) 회복 의지=이상진 씨는 논문 ‘일제하 만주의 조선인과 박경리의 토지’에서 ‘토지’의 주요 배경인 만주라는 공간의 특이성에 대해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만주는 중국 땅이지만 ‘토지’의 만주 이야기에는 구마 여사와 진 씨 형제 외에는 중국인이 나오지 않는다. 당시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가난이 큰 이유였지만 ‘토지’에서는 가문 재건이나 신분 위장, 애정 도피 등의 이유가 많다. 또한 ‘토지’ 속의 만주에는 농사 대신 상업에 종사하는 조선인이 더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상진 씨는 “‘토지’의 만주 이야기를 보면 작가는 만주를 가로지르는 쑹화(松花)강까지가 우리 땅이며, 만주는 물론 시베리아까지가 조선인 정신의 원류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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