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 급’ 배우들은 모여 있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주면서도 어딘지 위압적이었다. 땡볕에 그을린 영화 속 모습과 달리 피부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반질반질했고 강하고 세련된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들을 자랑했다.
“이렇게 망가진 적은 없었어. 영화에는 이런 장면 없는데 어떡하지?”
‘맏언니’인 여운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촌스러운 주황색 땀복에 낫을 거머쥔 다섯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이 영화의 포스터가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정말 그는 깐깐한 잔소리꾼 ‘회장댁’ 역과 어울렸다.
군기 반장 ‘여수댁’을 맡은 김을동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주유소에서 주는 껌 포장지에도 영화 사진이 붙었더라. 세상에, 내가 아무리 흉 없게 생겼어도…” 하고 웃더니, 이내 아들인 배우 송일국(드라마 ‘해신’ 출연)이 떠올랐는지 “내가 아무리 김두한 딸이라고 해도 이번엔 너무했나? (오른 주먹을 위압적으로 올리며) ‘욱’ 하는 이런 험악한 얼굴의 시어머니 밑에 어떤 며느리가 들어오려 하겠느냐”고 걱정했다.
욕쟁이 ‘진안댁’을 연기한 김수미가 분위기를 수습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망가져 보겠어.”
‘엽기 할머니’들의 캐릭터는 TV에서 낯익은 이들 중견배우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가져와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여운계는 깐깐하지만 똑 부러지고, 김을동은 투박하지만 정 많고, ‘일용 엄니’로 유명한 김수미는 금방이라도 ‘야, 이놈 새끼야’가 튀어나올 것만 같고, 쌍꺼풀이 인상적인 김형자는 주책바가지에다 공주병이다.
여운계는 동료 배우들의 캐릭터를 평소 모습에 빗대 한 마디씩 했다. “김형자는 왕년의 섹시스타야. 자타가 공인하는 예쁜이였지. 그래서 여기서도 ‘야스럽게’ 나온 거고…. 우리 ‘덩치’(김을동)는 보는 데 부담 좀 생기지? 그러니까 ‘폭력 할머니’로 간 거고.” 여운계는 “나는 지식깨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웃음) 국문도 깨친 사람 같고”라며 극중 유일하게 글 좀 읽는 ‘지식파’로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김을동은 “내가 사실 가장 순해 빠졌는데 비디오(외모) 하고 안 맞다 보니 그런 거지”라며 억울해 했다.
이정진 이문식 같은 젊은 배우들과의 궁합은 어땠을까. 중견 배우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투였다.
“연기 호흡은 지들(그들)이 우리한테 맞춰야지.(웃음) 누나가 다섯인데 꼼짝 못했어.”(여운계) 특히 김수미는 이정진이 이날 입대한 것을 두고 “정진이는 우리가 너무 쥐고 밟아서 군대 빨리 갔나봐” 하고 농담하면서 “사실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잘해줬지”라고 속삭였다.
‘젊은 남자배우’ 얘기가 나오자 ‘수다’의 봇물이 터진다.
“우리 중 한 명이 강제로 덮쳤으면 영화가 더 재미있었을 텐데 젊은 애들을 밭일에만 부려먹었네.”(김수미) “그건 내가 했어야 했는데.(웃음)”(김형자) “나이를 초월한 인간의 욕망 같은 걸 더 확실히 보여줬어야 했는데…. 더 주책 떨었어야 했는데.”(여운계)
사실 이들이 내세우는 최고 무기는 엽기적 캐릭터가 아닌 ‘팀워크’다. 김을동은 “젊은 배우들은 서로 스케줄 맞추느라 갈등이 많은데 우리는 그런 거 없다. 다 마음 넓은 어머니의 품성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니저들을 제쳐두고 자신들끼리 ‘언니’ ‘동생’ 하고 수시로 전화연락하면서 스케줄을 맞췄다고 한다.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마친 이들은 “신문 사회면이나 정치면에 ‘세게’ 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15세 이상 관람 가.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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