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이별했다. 그녀의 싸이월드를 공유하던 중 그녀에게 배달된 싸이월드 쪽지를 보게 됐다. “너와의 짜릿했던 키스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그녀는 부인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헤어진 후 알고 보니 ‘사람 찾기’를 통해 동명이인인 그녀에게 잘못 보내진 것이었다(20대 남자).
#사례2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의 치명적 결함을 알게 돼 헤어지자고 했다. 분개한 그는 교제 중 스크랩했던 내 사진들을 혼인 파기 법적 증거 자료로 내밀었다. 파티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남자들과 어울린 사진들이 정숙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30대 여자).
#사례3
싸이월드 일촌 중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 싸이월드 사진첩에 올리는 사진 대부분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아닌가. 누구랑 놀고 누구랑 안 놀고 하는 문제로 그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사진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40대 남자).
○인간 관계 축소판, 싸이월드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우리 시대 주요한 대중문화 코드일 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실현되는 인간관계 축소판이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1300만 명이 가입한 싸이월드 가입자 대부분은 자신의 일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미니 홈피’를 갖고 있다. 미니 홈피를 들여다보면 대략 그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출생연도와 이름만 입력하면 미니홈피가 검색되는 ‘사람 찾기’는 과거 동창 찾기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의 기능을 훌쩍 뛰어넘어 옛 친구의 지금 사는 모습까지 찾아볼 수 있게 했다. 한번 클릭으로 다른 사람의 미니 홈피로 이동하는 ‘파도 타기’를 하면 그의 교우 관계까지 파악된다. 놀랍고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최근에는 싸이월드에서 7명만 거쳐도 낯선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연구도 나왔다.
○오해-절교 불씨 되기도
문제는 초기 싸이월드를 통해 인맥 넓히기 유희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점차 예상치 못했던 반작용에 부닥치게 됐다는 점이다.
사진과 글은 전체공개, 일촌공개, 비공개 등 3단계로 분류해 미니 홈피 운영자가 ‘보여주기’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누구나 글을 남길 수 있는 방명록에서는 운영자의 알리바이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다. “어제 술 많이 마셨는데 괜찮니”,“다시 내게로 돌아와 줘” 등 통제 불가능한 사연들이 공개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방명록을 아예 메뉴에서 삭제하거나, 게시판에 일촌만이 글을 남길 수 있는 방명록 폴더를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몰래 엿보는 사람을 통제할 수도 없다. 친한 일촌끼리도 사진이 어떻게 인터넷에서 옮겨 다닐지 몰라 조심하기도 한다.
○P세대의 뉴 커뮤니케이션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따르면, 싸이월드 이용자 중 20, 30대가 전체 이용자의 57%를 차지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스타 심리’와 높은 참여(Participation) 의식을 갖고 있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인맥을 형성하고, 호기심과 열정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이들을 ‘P세대’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는 싸이월드 사업본부도 이미 문제점을 파악했다. 박지영 서비스혁신그룹장(30)이 밝히는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이렇다.
첫째, 일촌 관계와 방명록을 직장, 학교 친구, 가족 등 운영자가 스스로 그룹핑해 세분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사람 찾기 기능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든다. 셋째, 미니룸 스킨과 아이템을 운영자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창조한 싸이월드의 공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싸이월드 덕분에 ‘칭찬문화’가 확산됐다는 평가도 많다. 긍정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공개함으로써 자신감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표정, 음색, 상황 맥락이 배제된 인터페이스에서 싸이월드 세대는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며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 적당한 공개에 대하여….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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