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물의 도시 伊 베니치아

  • 입력 2005년 3월 3일 15시 51분


베네치아 교통의 중추신경을 이루는 대운하 카날 그란데. 베네치아는 크고 작은 수많은 운하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정태남 씨
베네치아 교통의 중추신경을 이루는 대운하 카날 그란데. 베네치아는 크고 작은 수많은 운하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정태남 씨
작은 운하를 끼고 있는 미로를 따라 걸어간다. 좁고 넓은 길과 크고 작은 광장들이 음악의 흐름처럼 연결되다가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이는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베네치아의 심장부 산마르코 광장. 동화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산마르코 대성당이 시선을 제압한다.

산마르코 광장의 건물들은 시대와 양식이 모두 다르지만 서로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다. 이곳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소광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소광장 양쪽에는 바다를 향해 두 개의 기둥이 서 있고 기둥 위에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사자 상이 올려져 있다.

소광장과 바다에 면해 있는 웅장한 규모의 석조 건물 총독궁. 아랫부분은 반복되는 기둥과 창틀이 잔잔히 펼쳐지고, 윗부분의 벽면은 연한 장밋빛과 흰 대리석을 교차시켜 모자이크처럼 처리돼 있다. 실제로는 딱딱하고 무거운 돌벽인데도 마치 부드러운 융단을 두른 듯하고, 좀더 멀리서 보면 이 육중한 궁전이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문화-종교-정치 중심지 산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의 구심점 산 마르코 대성당.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르코의 유골을 보존하기 위하여 11세기 초에 세운 것이다.

산마르코 대성당과 광장은 예로부터 베네치아의 문화, 종교, 정치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모든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 산마르코 대성당의 음악은 베네치아 공화국 관리들의 감독을 받았으며, 국가는 수준 높은 음악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성당의 음악 감독이나 오르간 주자, 오케스트라 주자는 당시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도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됐다.

1527년의 일이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음악감독에 플랑드르(현재의 벨기에 북부지방. 당시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한 음악가 아드리안 빌라르트가 초빙돼 왔다. 중부유럽과 북유럽의 우중충한 날씨만 봐왔던 그가 베네치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눈앞에 펼쳐지는 햇빛 찬란한 남국의 하늘과 지중해, 운하 위에 눈부시게 어리는 햇살, 물위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석조건물들, 축제의 장식처럼 아름다운 창(窓), 이국적 정취가 넘쳐흐르는 산마르코 성당과 우아한 총독궁, 심지어 그늘 속에도 찬란한 빛깔이 숨어 있는 듯한 환상적인 도시의 모습…. 그는 넋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 독특한 내부구조 ‘분리된 합창’ 형식의 탄생

그의 음악은 이곳에 온 후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고딕 건축과도 같이 정교하게 엇갈려 진행되던 선율에서 벗어나 보다 풍부한 화성 효과가 많이 도입되었다.

빌라르트와 그의 제자들의 음악에 영향을 준 것으로는 베네치아의 찬란한 풍광 외에도 산마르코 대성당의 독특한 내부 공간 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평면은 그리스 십자형으로 되어 있고, 그 상부에는 큰 돔을 중심을 하여 네 개의 돔이 십자형으로 놓여져 있다. 이와 같은 돔의 배열을 가진 내부공간에서는 아주 묘한 음향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빌라르트는 산마르코 대성당의 내부공간에서, 좌우 양쪽 돔 아래에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합창석과 두 대의 오르간의 선율이 함께 울려 퍼지는 음향의 대응 효과, 즉 ‘분리된 합창’이라는 형식을 시도했다. 그래서 금빛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 안에서 음악을 듣노라면 음 하나 하나가 금빛으로 울리고 은빛으로 화답하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 전 유럽에 영향 미친 베네치아 악파

빌라르트의 제자인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와 그의 조카 조반니 가브리엘리도 산마르코 대성당을 위해 작곡할 때는 이 성당의 내부 공간 구조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까 산마르코 대성당은 건축이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좋은 예가 된다.

산마르코 성당에서 빌라르트와 그의 제자에 의하여 시작된 베네치아 악파 음악은 색채가 풍부한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해갔고 곧 전 유럽에 알려졌다.

특히 조반니 가브리엘리가 산마르코 대성당의 음악 감독으로 있던 1600년대 초에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베네치아에 몰려들었다. 바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독일 음악가 하인리히 쉬츠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중해 햇살이 가득한 산마르코 광장. 광장에는 유서 깊은 카페 플로리안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비발디 음악이 바닷바람에 흩날린다. 밝은 선율이 녹아 흐르는 듯한 바다 위를 노 젓고 가는 곤돌라의 모습이 여기 저기 보인다. 눈부신 햇살 속으로 곤돌라는 멀리 사라져 간다.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도시 명물이 된 비발디父子 듀엣▼

이러한 음악적 토양에서 1678년 3월 4일, 찬란한 베네치아의 빛을 받고 안토니오 비발디가 태어났다. 그러니까 빌라르트가 베네치아에 첫발을 디딘 지 150여 년이 지난 다음이며, 바흐가 태어나기 7년 전이다.

이발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워낙 뛰어나 1685년에 산마르코 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그는 어린 비발디가 연주와 작곡에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간파하고 그를 직접 가르쳤다. 또 여러 가지 행사에 아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비발디는 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대신해서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루어진 듀엣의 연주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이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으니 비발디 부자(父子)는 베네치아의 ‘고급 관광 상품’이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80여 년 후에 오스트리아에서 등장할 모차르트 부자(父子)의 모습을 예고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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