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씨는 그것이 민족적, 영웅적, 선도적 행위라는 주장을 펴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3·1절에 독립기념관에서 공개적으로 알리려는 엉뚱한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 과연 양 씨의 행적이 독립기념관의 역사에 영예롭게 기록될 것인가. 이번 행위의 위법성 여부는 사법부에서 판단할 것이고 여기서는 ‘문화테러’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빗나간 ‘충의사 현판 훼손’▼
참된 문화는 다양성과 자율성에서 비롯된다. 독선적 정치나 비뚤어진 문화의식에서 문화를 조작, 악용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문화파괴 행위는 가장 큰 해악이다. 문화선진사회에서는 생각과 주장이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합리적 해결책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문화는 권력이 아니다. 정치권력은 4∼5년마다 선거에 의해 교체될 수 있지만, 한 나라의 문화는 수십, 수백 년에 걸쳐 하나씩 쌓이고 보존되어 내려 온 것이다.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개편 또는 재생되기 힘들며, 일단 파괴되면 복구가 매우 어렵다.
이번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국민들뿐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유족들이나 윤 의사의 정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3·1절 민족정신을 배우려고 독립기념관을 찾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해악을 준 삼중의 문화파괴 행위다.
양 씨가 충의사 현판 무단철거 및 파괴행위를 친일청산이라는 단순한 동기에서 했다면 해결방법을 잘못 선택하였다. 극적 효과를 노렸다면 공연장에서 자신과 공감하는 관객을 대상으로 뜻을 전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정치인이 되어 입법을 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공공문화재 파괴 행위는 청와대의 성명대로 ‘민주시민의 문화적 활동을 진흥해야 할 문화계 인사의 지극히 부적절한 행위’이다. 문화재를 권력물로 간주하여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이번 행위는 악의적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착각하고 이를 향해 돌진하는 행위를 보는 듯하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안돼▼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지역 문화계의 지도인사인 양 씨가 바로 그 문화를 파괴하고 문화재에 테러를 가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를 정당화하는 데에 있다. 그의 주장대로 그 현판이 특정인에 의해 쓰였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 행위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정파적 입장과 관계없이 이를 지극히 ‘부적절한 행위’로 이해하는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대다수일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상호공존하며 대화하는 다원사회, 개방사회, 민주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국민적 공감대다. 이제 독선적, 정치적 동기에서 문화파괴를 자행하는 일이 제발 다시는 우리 사회에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한국근현대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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