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아카시아’ 펴낸 황학주씨

  • 입력 2005년 3월 4일 16시 43분


이종승기자
이종승기자
‘아카시아’(9800원·생각의 나무) 134쪽에는 초원에 덩그러니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 옆에 저자 황학주(사진) 씨가 일몰의 지평선을 등진 채 서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황 씨는 알몸이다.

“제가 머물던 케냐 카지아도 마을의 초원은 돌무지 모래 혹은 수도승처럼 군데군데 서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 말고는 지평선까지 누드, 그 자체지요. 나와 초원과 마사이족은 알몸처럼 순수하게 만났습니다.”

시인이자 국제민간구호단체 ‘국제사랑의 봉사단’ 이사인 그는 1995∼97년 야수의 왕 사자도 두려워한다는 마사이족의 거주지인 카지아도에서 봉사와 구호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공무는 뒷전인 채 놀거나 (마사이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영혼에 강한 영감과 상상력을 불어넣었던 그 땅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2003년 사진작가 이상윤 씨와 함께 다시 카지아도로 날아가 마사이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찍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황 씨는 자신이 겪고 보고 같이 나눴던 마사이족의 삶과 생활방식, 그리고 원초의 땅에서 느꼈던 순수한 기운들을 미려한 문체로 그려냈다.

“저는 다행히 그들에게 뭔가를 주고자 하는 욕망, 허위의식, 허세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나에게 줄 것이 없었지요. 그래서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카시아 나무 곁을 서성대거나 개미무덤 위에 올라가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다 마사이 친구가 초대하면 쇠똥과 진흙으로 만든 그들의 집에 들어가 옥수수와 콩을 넣어 끓인 게제리를 맛보았다. 그의 모습이 초원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사이 친구들은 소리 내어 ‘에즈라’(저자의 영어식 이름)를 부르기도 했다.

“서구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름 아래아시아를 그저 신비롭고 마냥 순수하게 봤던 오류를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봐야지요.”

아직도 여성들이 소를 치고 집을 지으며 밥을 하는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물을 긷기 위해 20∼50km를 걸어야 하는 그 땅에는 황 씨의 이름을 딴 아카시아 나무가 서 있다.

“제가 떠날 때 친구들이 붙여주더군요.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과욕입니다. 다시 돌아가면 마사이의 이름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황 씨의 눈 속에 알몸의 아프리카가 어른거리는 듯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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