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도쿄(東京)대 교수를 지낸 오쓰카 히사오(大塚久雄·1907∼1996)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는 일본의 ‘전후’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며 ‘전후 정신의 지주’로 일컬어지는 지식인이다.
오쓰카는 경제사학의 대가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막스 베버와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방법론을 통해 일본사회의 전근대성을 극복할 근대적 인간형의 창출을 모색했다. 그의 독창적 학풍은 ‘오쓰카 사학’이라 불릴 정도였다.
마루야마는 일본정치사상사의 대가로, 전후 천황제와 일본형 파시즘의 메커니즘을 통렬히 비판하고 주체적 자유를 내면화한 개인을 강조해 천황제라는 주술(呪術)로부터 일본 지성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지성계에서 그의 위치는 ‘마루야마 덴노(天皇·천황)’로 불릴 만큼 독보적이었다.
이 책은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 온 두 대표적 지식인의 사상의 궤적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의 관계를 연구했다.
일본인들은 흔히 1945년의 패전을 역사의 단절로 파악한다. 즉, 전전에는 군국주의 파시즘이 사회전체를 억압했지만 패전을 계기로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사회로 다시 태어났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의식적 단절에는 과거의 침략과 전쟁은 현재의 일본과 무관하다는 정신적 면죄부가 숨어 있다.
이 책의 저자(도쿄외국어대 교수)는 ‘총력전 체제론’으로 전전과 전후를 잇는 일본인 의식세계의 징검다리를 파악한다. 총력전 체제론이란 차별받는 주변 집단이나 계급을 국민국가에 최대한 포섭해 국가적 목표를 위해 모든 사회자원을 동원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는 전전이나 전후에나 총력전 체제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전후에도 총력전 체제론이 기능하게 된 데는 바로 전후 일본 지성계를 대표해 온 두 사람의 인식이 작용했다는 점을 분석했다. 오쓰카는 1930년대 전시동원이라는 맥락에서, 전후에는 전후 부흥이라는 맥락에서 생산력의 동원을 강조했고 마루야마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이미 ‘아래로부터의 동원’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시민사회의 자원봉사 활동이 결국 이러한 총력전 체제에 포섭된 결과라는 점에서, 일본 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자율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동일성의 껍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통찰로 이어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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