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독일 슈투트가르트

  • 입력 2005년 3월 10일 15시 20분


슈투트가르트의 중심을 이루는 광장 슐로스플라츠. ‘독일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인을 배출한 슈바벤 지방의 중심도시 슈투트가르트는 유럽에서 녹지가 가장 많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 정태남 씨
슈투트가르트의 중심을 이루는 광장 슐로스플라츠. ‘독일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인을 배출한 슈바벤 지방의 중심도시 슈투트가르트는 유럽에서 녹지가 가장 많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 정태남 씨
《슈바벤 지방은 일반적으로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남부 지방을 말한다. 슈바벤이라면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깊은 산 속 옹달샘’이 바로 이곳 민요이다.

슈바벤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들로 예로부터 부지런하고, 곧이곧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고 보면 예로부터 독일의 주요 정밀공업과 벤츠, 포르셰 등 자동차 공업 등이 슈투트가르트 주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는 듯하다.

또 전혀 다른 면도 있다. 이들은 비현실적인 면이 다분히 있는 데다가, 감상적이고, 명상적이며 또한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고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슈바벤은‘독일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인들을 배출했다.

예를 들어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반경 30km 안을 보면, 슈투트가르트 북쪽 작은 마을 루드비히스부르크에서는 뫼리케가, 마르바흐에서는 실러가, 서쪽 작은 마을 칼브에서는 헤세가, 남쪽의 작은 도시 튀빙겐에서는 횔덜린이 출생했다.

또, 시인은 아니지만 철학자 헤겔은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태어났다. 》

○ 합창, 발레, 악기제조… 남부독일의 문화중심지

슈투트가르트의 중심을 이루는 대광장 슐로스플라츠 뒤쪽 아데나우어 거리에는 슈투트가르트 사람들이 자랑하는 신(新)주립미술관이 있다. 1983년 영국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이 설계한 이 미술관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 이후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잘 파악할 수 있다. 주립미술관 바로 옆에는 슈트트가르트 음악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사이의 길 이름은 카를 오이겐을 기념하는 ‘오이겐슈트라세’이다.

슈투트가르트는 합창음악, 발레, 실내악, 악기 제조 등으로 유명한 곳으로 남부독일에서 뮌헨과 함께 가장 부유한 도시이며 중요한 문화중심지로 손꼽힌다.

슈투트가르트가 남부독일의 문화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슈투트가르트 북쪽 15km지점에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을 세운 루드비히 공(公)의 후계자인 카를 오이겐이 통치할 때였다. 그는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에서, 음악을 사랑하던 프리드리히 대왕 아래에서 성장했으며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지도도 받았으니 음악적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군주였다.

그는 1754년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욤멜리와 ‘발레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던 프랑스의 안무가 노베르를 궁정으로 초빙하여 슈투트가르트의 오페라, 오케스트라, 발레를 최상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려놓는 등 문화환경을 향상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것도 바로 그가 통치할 때였다.

○ 민요 ‘깊은 산 속 옹달샘’의 본고장

1807년에는 유명한 음악가 베버도 궁정에 3년간 초빙되었다. 당시 그는 민요에 열정적이던 슈바벤 청년 질혀에게 관심을 갖고, 그에게 음악가의 길을 걷도록 충고했다. 그 후 이 청년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음악교사 및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튀빙겐 대로 옮겨 그곳에서 수많은 민요를 정리하고 작곡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 ‘깊은 산 속 옹달샘’도 그가 정리한 것이다. 독일어 원제가 ‘저 아래 운털란트에서’인 이 노래는 슈바벤의 향토시인 바이글레가 1835년 가사를 썼다. 우리말 가사와는 달리 순박한 슈바벤 사람들과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이다.

슈투트가르트는 옛 건물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특징 없는 도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를 걷어내고 나름대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독특한 새로운 현대도시의 분위기를 구축해온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푸른 언덕과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심에는 넓은 숲이 있어서 전원적이며 목가적인 분위기를 보존하고 있다. 사실 슈투트가르트는 유럽에서 녹지가 가장 많은 도시 중의 하나다.

그러고 보면 슈투트가르트는 어쩌면 ‘도시’보다는 ‘슈바벤의 큰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더 어울릴 것만 같다.

봄기운이 돋는 슈바벤의 숲 속을 걸어가면서 ‘깊은 산 속 옹달샘’을 한번 휘파람으로 불러본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베토벤-로시니에 靈感 준 ‘실러의 문학’▼

슐로스플라츠는 실러 광장과 연결된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발센이 제작하여 1839년에 세운 시인 요한 크리스토프 실러(1759∼1805)의 동상이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아들’ 실러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의학을 공부한 다음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는 시인이자 극작가, 미학자이며 사학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평생 음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에서 문장의 흐름을 보면 음악적인 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음악을 이해하고 올바로 평가할 줄 알았다고 하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에는 그의 ‘환희에 부쳐’가 인용되었는가 하면, 로시니의 오페라 ‘기욤 텔(윌리엄 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 ‘조반나 다르코(잔 다르크)’ 등은 실러의 작품을 토대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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