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는 기술이다. 공짜로 알려 주마
최 씨는 처음부터 “사교육계에 반란을 일으킬 작정”으로 ‘티치미’를 오픈했다고 한다.
“강사가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창의적 지식은 비싸도 괜찮지만 수험생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대개 위 세대가 쌓아온 상식적인 지식을 아래 세대에게 요령 있게 전달하는 것인데 거기에 지나치게 거품이 많이 끼었다. 그걸 걷어내 보자고 생각했다.”
|
지난해 1월 ‘프리에듀넷’을 설립하고 6월 강남구청과 대치문화복지회관에서 무료강의를 시작한 이 씨의 목표도 “강의를 상품화하지 않고 공공재로 만드는 것”이다.
1997년 강남구 대치동에서 통합과학 강의를 시작한 이 씨는 2000년부터 전국에서 과학탐구 수강생이 가장 많은 ‘학원가의 슈퍼스타’였다. 2001년 여름에는 그의 강의를 들으려고 한꺼번에 4500명이 몰린 적도 있다. 2003년 말 온라인 입시교육 전문회사 ‘메가스터디’를 그만두고 학원가를 떠날 때까지 그는 4년간 연수입 16억 원가량을 유지해 왔다.
막대한 수입원을 버리고 무료강의를 시작한 까닭에 대해 그는 농반 진반으로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라고 했다. “운이 좋아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많은 걸 얻었다. 사교육계에서 매출의 도구로 전락하는 듯해 빠져나오고 싶었고,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이유다.
○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서울대 철학과 84학번인 최 씨는 학생운동을 하다 두 차례 투옥된 경험이 있다. 1987년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씨와 절친했던 그는 친구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박종철출판사를 설립하고 7년에 걸친 번역과 감수 끝에 1997년 6권짜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을 펴내기도 했다.
1999년 호구지책으로 보습학원에서 영문법 강의를 시작했다가 새로운 길을 만난 그는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봤을 ‘데일리잉글리시닷컴’(www.dailyenglish.com)의 대표이기도 하다.
시대의 추세에 맞게 발 빠른 변신에 능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이에게 20대의 경험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사고방식은 달라졌어도 기본 바탕은 그대로”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내가 속한 장에서 비상식적인 것이 역사적 시기와 장소를 너무 오래 차지하는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부수는 일을 하지 않고선 못 배기는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데일리잉글리시닷컴’이나 ‘티치미’는 이 방식이 옳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혁명가적 사고’의 산물이다.
반면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88학번인 이 씨는 학부시절엔 대학신문 사진기자로 시위현장을 누볐고 과학사 대학원 시절엔 계간 ‘학회평론’ 편집자문위원을 맡아 사회의식을 길렀다. 박사과정 때 아르바이트로 발을 들여놓은 학원 강의가 그의 진로를 바꿔놨지만 그는 스스로 “20대부터 옳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가치를 최종적으로 배신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무료강의는 “지금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적의 가치 있는 일”이다.
○ 존중받는 학원강사 모델로
이 씨는 무료강의가 사교육비의 절감 효과뿐 아니라 수험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을 유도하는 매개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의 유료강의는 한번 등록하면 끝까지 다녀야 하지만 무료강의는 수험생이 스스로 공부하다가 필요할 때 간략하게 참고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휴대전화의 문자사서함에는 고맙다는 수험생들의 인사와 함께 ‘과학문제 몇 번이 잘 이해가 안 돼요’ 같은 메시지가 빼곡하다.
혹시 이들이 실력이 떨어져 대치동 학원가를 떠난 것은 아닐까. 최 씨는 “무료강의는 강의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아무나 시작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수험생뿐 아니라 현직 교사, 강사 등 누구나 볼 수 있고 수험생들이 커뮤니티에서 수시로 강의평가를 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벌거벗겠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라는 것. 그는 “우리는 어쩌면 오만한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통해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므로 ‘역시 잘한다’는 칭찬을 받는 재미를 느낀다. 또 도덕적으로 존중받고 학원 강사도 학생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자부심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