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인 저자는 1992년 단 한 권의 책 ‘역사의 종언(The End of The History And The Last Man)’으로 하루아침에 당대의 석학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세계 지식인 사회는 물론 외교 및 공공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역사의 종언에 이어 1995년 ‘트러스트’, 1999년 ‘대붕괴’ 등 책을 낼 때마다 ‘후쿠야마 신드롬’이 이어졌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승리를 선언한 그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러나 이 책은 네오콘들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듯하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정작 원하는 이라크 문제에 대해 명료한 답을 피하고 있고, 미국식 국민국가 건설(nation building)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을 비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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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교수는 이 책에서 21세기 국제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로 ‘약한 국가(weak state)’의 존재를 지목한다. 약한 국가란 국가의 제도적, 조직적 기능과 능력을 상실해 개별 집단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를 일컫는다.
소말리아, 아이티, 캄보디아, 보스니아, 코소보, 르완다,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콩고, 동티모르 등 ‘약한 국가’로 인해 빈곤 에이즈 마약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세계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따라서 이들 약한 국가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적극 개입해 강한 정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옳다고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
특히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외부 세력의 지원이 강한 국가를 만들어 내진 못했으며 국제공동체가 상당수 제3세계 국가에서 제도적 역량을 파괴하는 공모자가 되기도 했다.
미국은 쿠바, 필리핀,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파나마, 니카라과, 한국, 베트남 등에 점령군의 지위를 확보하고 제도 형성에 간여하려 했지만 한국을 제외하곤 장기적 성과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 한국의 성과도 미국의 노력보다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나아가 9·11테러는 새로운 난제를 가져왔다. 인도주의 문제로 봤던 실패한 국가의 문제가 갑자기 안보 차원에서 다뤄졌다. 또 미국 외교정책은 적(敵)이 될 가능성이 있는 테러(지원)국에 대해 예방 차원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선제공격론으로 발전했다.
이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국가의 면모를 한번도 갖춰 본 적이 없는 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이라크는 제대로 작동하던 국가 제도의 대부분이 전쟁의 여파로 붕괴되거나 미국에 의해 해체 당해 이를 재건해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됐다는 것이다.
주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서도 후쿠야마 교수는 1990년대 인도주의적 개입 원칙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논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그는 군사력을 이용해 국민국가에 개입하는 것은 충분한 방법이 아니라며 “어떤 면에선 (국제적 다자주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유럽인들이 옳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어떤 방법이 더 나을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유보적 태도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 대목에선 차라리 영국 학자 니알 퍼거슨이 더 명쾌한 답을 내놓고 있다. 그는 곧 국내에도 번역될 예정인 ‘거상(巨像): 미 제국의 대가(Colossus: The Price of America's Empire)’에서 미국이 사실상 ‘제국’이면서 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 위선’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은 약한 국가에 개입한 뒤 국가 건설이 요구되는 상황에선 정작 적절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이제 제국으로서 그 임무를 떠맡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원제는 ‘State Building’(2004년).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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